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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32)] 고맙고, 반갑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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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32)] 고맙고, 반갑고, 사랑한다

[글로벌이코노믹 박여범 용북중 교사] 학창시절의 2월은 싱숭생숭 보낸 기억이 압도적이다. 과거를 지나 교사로서 현재의 나는 여전히 심란하고 허전하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매년 2월은 심란하다. 딱히, 이유가 없다. 학생들과 다른 선생님들은 2월의 끝자락은 어떤 일상일까?

신학기를 시작하는 준비기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졸업과 생활기록부 정리, 업무분장 등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는 2월. 도대체 그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 평상시 아이들에게 인기도 없는 나에게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질문 아닌 질문으로 나를 귀찮게(?) 했다.

“쌤, 우리 2학년 담임 해 주실거죠? 기다릴께요? 아 벌써 떨려?”

“야그들아, 시간이 되면 담임 발표 할틴디. 뭘 그리 아우성이니?”

“아니예요, 벌써 선배들은 다 알고 있던디유, 어느 선생님이 어느 반 담임이신지 말이예유, 쌤도 궁금하시지유?”

“그래, 그럼 쌤에게만 살짝 알려주면 안되겠니? 정말 쌤도 궁금헌디?”

“싫어유, 쌤”

복도를 지나가거나 수업을 들어가거나 교무실에서나 식당에서나 체육관에서나, 아이들의 질문은 오로지 신학기 담임에 대한 질문이 주된 관심사였다. 물론, 다른 선생님들도 이런 구태의연한 질문을 같이 즐기며,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교정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다림으로 보낸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에게는 작은 선물이 주어졌다. 고맙고, 반갑고, 사랑스런 아이들. 바로 2학년 2반 29명의 아이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나에게 온 29명의 사랑스런 선물, 우리 아이들.

담임 배정을 받고 교무실을 나와 2학년 2반 교실로 들어가기 전, 난 장난삼아 3학년 교실 복도를 지나갔다. 3학년 아이들이 복도의 나를 향해 있었다. 심지어 교실을 뛰쳐나와 나의 손을 잡아끌고 3학년 교실로 들어가자고 귀여운 앙탈(?)을 부리는 아이도 있었다.

이러한 풍경은 여러 선생님의 장난으로 일단락 된 후에야 각 교실에서는 함성이 울려퍼지곤 한다. 2학년 2반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의 아이들의 대단한 호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호응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이 밀려왔다. 많은 담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담임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1학년 국어 수업 시간에 만난 아이들이 눈에 띄고, 아직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29명의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얼굴도 확인하고 윙크도 주고받으며 진한 애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봄방학에 들어갔다.

아이들과 새롭게 1년을 동고동락할 2학년 2반 교실 대청소를 시작으로, 책걸상, 신발장, 사물함 이름표 부착하기, 학급목표 정리하기, 먼지 제거하기 등 신학기 담임업무를 시작하였다. 신학기 담임업무를 시작할 때마다 떠오르는 애송시가 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며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아이도 어른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재능이 있는 자도 없는 자도 다 나름대로의 ‘흔들림’ 속에서 아름다운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다. 한 가지 사소한 희망이 있다면, 그 ‘흔들림’이 ‘많이 아프지 않은 성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아다보면, 나의 ‘흔들림’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런 날들로 주변의 지인들이 알아주지 않음에 서운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처럼 ‘흔들림’은 당사자에게는 힘든 과정이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이에게는 ‘그저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시대가 이타적인 삶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고맙다, 반갑다, 사랑한다.
2학년 2반 29명 친구들아. 올 한 해 너희들과 함께 많이 울고 웃으며, 흔들림 속에서 활짝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을 만나보자. 서로 아끼고, 같이 아파하며, 같이 웃어주는 학교생활에서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처럼, 파이팅 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개학하는 날, 서로를 향해 인사를 나누자.
당근, 멘트는 “고맙다, 반갑다, 사랑한다.”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