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휘궁(점집)의 무속이야기]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 당곡리 십이장신당(永同堂谷里十二將神堂)

2018-03-03 08:37:46
관운장을 비롯하여 12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신당.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에 위치하며, 1972년 12월 26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영동군 당곡리는 ‘당(堂)이 있는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곧 십이장신당(十二將神堂)을 이전한 이후에 생겨난 명칭이다. 신당은 애초 상촌면 고자리 ‘산너머당골’에 있었다. 어느 날 영동군수의 꿈에 관운장이 나타나 ‘이곳은 바람이 세어 못 살겠으니 고곡리로 옮기라’고 지시하여 사당을 옮기고 마을명을 당곡리로 개칭하였다.

당은 흔히 ‘관우사당(關羽祠堂)’ 또는 ‘관우묘(關羽廟)’로 불리고 있으며, 본당(本堂)과 별각(別閣)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당에는 ‘12장신’의 영정, 별각에는 관우의 적토마 화상을 각각 모셔 놓고 있다. 본당의 12장신은 구체적으로 『삼국지(三國志)』의 주요 등장인물로서 관운장(關雲長), 장익덕(張翼德), 제갈공명(諸葛孔明), 조자룡(趙子龍), 황충(黃忠), 강유(姜維), 마초(馬超), 마직(馬稷), 요화(寥化), 위연(魏延), 창위(菖偉), 마축(麻竺) 등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 이수자 만신 김금휘씨가 기도터인 당곡리십이장신당(永同堂谷里十二將神堂)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 이수자 만신 김금휘씨가 기도터인 당곡리십이장신당(永同堂谷里十二將神堂)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영동당곡리십이장신당(永同堂谷里十二將神堂)과 관련된 전설이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신당은 상촌면 고자리에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영동현감 꿈에 신당의 주인격인 관운장이 현몽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금 있는 자리가 편치 못하니 저 산 너머 고곡리 정결한 곳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하기에 그 후 신당을 고곡리로 옮기고 마을이름도 당곡리로 바꿨다고 한다.

때는 선조대왕 25년 어느 봄날이다. 선조대왕께서는 춘곤을 못 이겨 깊은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위풍이 당당한 한 장군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고 삼각수를 날리며 늠름하게 대궐 안으로 들어와서 선조대왕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아우님 그간 별고 없으신지? 나는 삼국시대 관우인데 우리의 의리와 인정을 잊지는 않았겠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말일세. 우리 삼형제는 살아서는 합심협력하며 서로를 도왔고 특히 형님(유비)이 촉한의 왕이 되자 나(관우)와 동생(장비)은 촉한에 충성을 바치고 마침내 순국하지 않았는가? 우리 삼형제는 한 세대가 끝나고 영혼의 세계에서도 그 의를 지켜왔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형님은 명나라의 신종황제가 되고 나는 전쟁에서 인명을 너무 많이 해쳐서 인간 환생이 안 되었고 아우는 현재 조선왕이 되었지. 머지않아 동생의 나라에는 큰 병란이 일어날 텐데 아무 방비도 없이 나날이 보내는 동생이 딱해서 지금 내가 일깨워 주러 왔네. 이 난리는 표독한 왜적이 쳐들어오는 난리인데, 7~8년이나 걸릴 테니 명나라 신종황제(유비)에게 구원을 청해서 수습하도록 하게. 내가 신종황제에게 도원의 고사를 들어 간곡히 부탁할 테니 주저 말고 시행하게’하고 사라졌다. 이상한 꿈이었다.

그러나 정신이 아찔하고 머리가 핑 돌았다. 선조대왕은 조정의 백관과 더불어 방책을 논의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힘없는 조정은 별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관운장이 현몽한 것처럼 선조 25년 4월 왜군 15만이 부산에 상륙하여 쳐들어오니 이것이 임진왜란이다. 막아낼 재주가 없는 선조대왕은 서울을 비우고 의주로 피란을 가니 삼천리 강산은 초토화 되고 피가 흘러 강이 되었다. 이 틈에 많은 보물과 문화재는 왜적들의 손에 들어갔고 피란민들은 쫓기다 굶어죽은 자가 부기지수였다. 임진왜란이야말로 반만 년 이래 대전란이었는데 자칫하면 국맥이 끊어질 뻔한 위기에까지 다다랐다. 선조대왕께서는 의주에서 사신을 명나라 신종황제에게 보내어 원병을 청하였다.

그 요청이 간곡해서인지, 관우의 신종황제에 대한 현몽에 감동해서인지 신종황제는 이여송을 총수로 하여 5만의 군사를 파병하였는데 마침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전쟁은 가까스로 끝이 났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그간에 겪은 말할 수 없는 오욕과 회한과 비통과 수모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마는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것이 있다. 그것은 관우의 현몽이요, 명나라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관제묘를 건립하였는데 명나라 신종황제는 사신을 보내어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당곡리십이장신당은 서울 대전 충주 청주 수원 용인 성남 분당 판교 등지의 무속인들이 자주 찾는 기도처이기도 하다. 이곳 신당은 해마다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이를 흔히 ‘산제 잡순다’고 한다. 제일은 정월 열나흗날이라고 금휘궁(점집) 무당 김금휘는 전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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