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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스포츠카 개발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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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스포츠카 개발 어디까지 왔나

1990년 국산차 최초 스포츠 쿠페 모델로 이름을 알린 현대자동차 스쿠프(사진은 1995년식 모델). 사진=현대차이미지 확대보기
1990년 국산차 최초 스포츠 쿠페 모델로 이름을 알린 현대자동차 스쿠프(사진은 1995년식 모델). 사진=현대차
스포츠카는 자동차산업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스포츠카는 이동과 운송 등 차량의 기본적인 기능외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수려한 외모와 강력한 성능 등 감각적인 요소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카는 고급 세단과 함께 자동차 제조업체가 가진 기술력을 총동원하기 때문에 제조업체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 업계는 실용적이고 상품가치가 높은 자동차 생산에 주력해 왔다. 그렇다고 이들이 색다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스포츠카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그동안 내놓은 스포츠카가 여러 이유로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국내 자동차 산업도 자동차 기술력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카 생산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1990년 최초의 스포츠 쿠페 스쿠프의 등장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남긴 스포츠카들을 돌아본다.

◇최초의 국산 쿠페 '현대자동차 스쿠프' (1990~1996)


1990년 출시된 현대자동차 스쿠프는 당시 젊은 세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차량이다.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선보인 2도어 쿠페 모델 스쿠프는 소형차 엑셀(Excel)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에어로 다이나믹(공기역학)을 강조한 외관 디자인과 국산차 업계 최초로 시도한 2도어 쿠페형 차체는 낭만을 추구하던 20·30세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실 스쿠프는 정통 스포츠카가 아닌 스포츠카 외형을 가진 정도에 불과한 차종이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스쿠프는 후대에 등장할 정통파 스포츠카의 등장에 불씨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스쿠프는 국산차 최초의 가솔린 터보 엔진을 적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91년 등장한 독자 개발 알파 엔진에 가레트 터보차저를 적용한 스쿠프 터보는 가속력(계기판이 시속 100km까지 가는 시간)이 약 9.18초에 최고속도 시속 200km의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쿠프는 세계적인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당시 국산차 가운데 성능이 손꼽히는 차 중 하나였다. 1016kg의 가벼운 차체에서 오는 경쾌한 몸놀림과 터보 엔진의 막강한 힘을 가진 스쿠프는 대한민국 모터스포츠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국내 최초 정통 경량 2인승 로드스터 '쌍용자동차 칼리스타'(1992~1994)

영국 팬더 웨스트윈드를 인수해 만든 컨버터블 스포츠카 '쌍용 칼리스타'. 사진=쌍용차이미지 확대보기
영국 팬더 웨스트윈드를 인수해 만든 컨버터블 스포츠카 '쌍용 칼리스타'. 사진=쌍용차


스쿠프 다음으로 국내 스포츠카 역사를 쓴 제조사는 옛 신진지프 시절부터 민수용 지프 기반 차를 만들어온 쌍용자동차였다. 1992년 쌍용자동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스포츠카 ‘칼리스타’는 경량 스포츠카를 잘 만드는 영국 혈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정통 2인승 로드스터(지붕을 자유롭게 접을 수 있는 차)였다.

쌍용차가 이 고풍스런 외형의 오픈카를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87년 쌍용차가 영국 자동차 제조사 팬더 웨스트윈드(PantherWestwinds·이하 팬더)를 인수했기 때문이었다.

칼리스타는 재규어 SS100 등 영국 스포츠카에서 영감을 얻는 자동차 외관과 더불어 경량화 설계, 그리고 철저하게 단순한 구조를 적용했다.

비록 스포츠카에 걸맞지 않게 엔진 출력이 부족했지만 차 무게가 가벼워 가속, 기동 성능을 중시하는 영국식 로드스터 느낌을 줬다. 하지만 칼리스타는 당시 기준으로 중형 세단 3~4대에 버금가는 3000만 원대 비싼가격과 수제 스포츠카의 대량생산 한계 등으로 출시된 후 2년이 지난 1994년 생산이 중단됐다.

두번째 국산 스포츠 쿠페 '현대차 티뷰론' (1996~2001)

1996년 출시된 현대차의 두번째 스포츠 쿠페 '티뷰론'. 사진=현대차이미지 확대보기
1996년 출시된 현대차의 두번째 스포츠 쿠페 '티뷰론'. 사진=현대차

티뷰론은 스쿠프의 뒤를 이은 현대차의 2세대 스포츠 쿠페다.

이 차량은 1995년 출시한 아반떼(J2) 플랫폼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991년 선보인 HCD-1 컨셉트카를 바탕으로 한 육감적이고 볼륨감 넘치는 외관 디자인은 당시 국산차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또한 그러면서도 일반 승용차에 비해 가격도 비싸지 않아 젊은 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티뷰론은 스포츠 쿠페로 개발됐지만 외형과 내부 보강에도 신경을 썼다. 티뷰론은 독일 스포츠 완성업체 포르쉐와 공동 개발한 전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탑재해 주행 성능을 보강했다. 스쿠프에 비해 한 체급 커진 차체에 맞게 새 엔진을 얹었다. 현대차가 본격적으로 개발한 두번째 독자 엔진 베타 엔진도 장착했다. 티뷰론에 사용된 베타 엔진은 1.8L와 2.0L다.

티뷰론은 스쿠프가 했던 것 처럼 국내 모터스포츠 양산차 경기의 출전 차량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티뷰론은 티뷰론 부분변경 모델 '터뷸런스'과 함께 국내 각종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그 뿐만 아니라 현대차는 티뷰론을 통해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 월드 랠리 챔피언십(World Rally Championship)에도 출전했다. 티뷰론과 터뷸런스는 5년간 생산됐다. 그러나 이들 차량은 2001년 후속차종 투스카니가 출시되며 단종됐다.

기아 도전정신이 빛을 발한 순간 '기아자동차 엘란' (1996~1999)

기아는 영국 로터스에서 개발된 2인승 스포츠카 '엘란'을 사들여 1995년 국내에 출시했다. 사진=기아이미지 확대보기
기아는 영국 로터스에서 개발된 2인승 스포츠카 '엘란'을 사들여 1995년 국내에 출시했다. 사진=기아

엘란은 영국 자동차업체 로터스(Lotus)가 개발한 경량 2인승 스포츠카다. 로터스는 스포츠카를 만들어 온 자동차 제조업체 겸 영국의 유서 깊은 모터스포츠 종가이기도 하다. 또한 자회사 로터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의 설계 위탁, 자문 등 활동도 병행했다. 기아가 엘란을 인수한 배경에는 기아 승용차 '크레도스' 설계 용역을 로터스가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은 데 따른 것이다.

기아는 1995년 엘란을 인수했지만 엘란에 탑재할 독자 엔진과 변속기가 없어 엘란을 곧바로 출시할 수 없었다. 이는 일본 이스즈의 파워트레인(엔진, 구동계, 변속기)을 쓰고 있었던 로터스가 기아의 품에 안기면서 자동차 파워트레인 라이선스(허가)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아는 독자개발을 완료한 1.8L T8D 엔진을 엘란 전용으로 튜닝한 ‘T8D 하이 스프린트’ 엔진을 얹어 승용차 세피아의 수동 5단 변속기를 물려 1996년 국내 시장에 본격 출시했다.

엘란의 심장인 T8D 하이스프린트 엔진은 국내 완성차 업계에 전례 없는 고회전형 엔진이었다. 1.8L 배기량으로 최고출력 151마력, 최대토크(회전력) 19.0kg.m를 내 가벼운 스포츠카 엘란의 성격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칼리스타가 그러하듯 수제 생산에 따른 대량생산 한계와 수익성 문제가 맞물려 1999년 단종됐다.

현대차 스페셜티카 계보 대미를 장식 '현대차 투스카니' (2001~2007)

2001년 개선된 서스펜션, 차체, 새로운 엔진 2.7L 델타엔진을 적용해 출시한 투스카니. 사진=현대차이미지 확대보기
2001년 개선된 서스펜션, 차체, 새로운 엔진 2.7L 델타엔진을 적용해 출시한 투스카니. 사진=현대차

투스카니는 스쿠프와 티뷰론에 이어 현대차가 선보인 대한민국의 3대 토종 스포츠 쿠페 모델이다. 스쿠프, 티뷰론, 투스카니로 이어지는 현대자동차 스포츠 쿠페 모델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자동차다.

투스카니는 외관 디자인부터 티뷰론, 터뷸런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근육질의 육감적인 차체를 지녔던 티뷰론에 비해 직선을 사용해 한층 절제된 외형이 특징이었다.

엔진은 티뷰론에 사용된 직렬 4기통 2.0L 베타 엔진과 투스카니를 위해 개발된 2.7L 배기량의 6기통 델타 엔진 두 가지 엔진을 적용했다. 특히 2.7L 델타 엔진을 탑재한 모델은 ‘엘리사(Elisa)’라는 등급으로 불렀는데 이 등급명이 아예 2.7L 투스카니 엘리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투스카니는 대한민국 자동차 애프터마켓(튜닝부품 시장) 업계에 활기를 띄게 만들고 모터스포츠 무대의 주역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튜닝 부품 시장에는 투스카니를 위한 부품이 대거 선보였다. 자잘한 꾸미기용 아이템부터 시작해 성능 향상(머플러, 터보, 바디킷, 서스펜션) 부품에 이르기까지 '나 만의 투스카니'를 완성할 수 있는 다양한 부품들이 등장했다. '스포츠카 일반화'라는 존재가치에 충실했던 투스카니는 스쿠프, 티뷰론과 함께 대한민국 모터스포츠 무대를 이끌었던 핵심 차종 중 하나로 맹활약했다.

국내 최초 후륜구동 스포츠카 -'현대차 제네시스 쿠페' (2008~2012)

현대자동차가 최초로 개발한 후륜구동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 사진=현대차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자동차가 최초로 개발한 후륜구동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 사진=현대차

제네시스 쿠페는 포니와 스텔라 단종후 전륜구동차만 생산해 온 현대차가 제네시스 세단과 함께 야심차게 내놓은 국내 최초 후륜구동 스포츠카다.

제네시스 쿠페는 스쿠프,티뷰론, 투스카니까지 이어진 스포츠쿠페 와는 전혀 다른 중형급 후륜구동 스포츠카로 개발돼 주목 받았다.

이 차종은 현대차 역사 상 최초로 전담 개발팀을 뽑아 개발된 차종답게 과거 현대차 와는 혈통부터 달랐다. 전륜구동 스포츠 쿠페 와는 다른 고성능과 차원이 다른 주행 경험을 선보이기 위해 탄생한 차종이다.

2007년 11월에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제네시스 쿠페 컨셉트카로 모습을 드러낸 제네시스 쿠페는 2008년 출시돼 전 세계 주요 국가에 판매를 시작했다. 제네시스 쿠페는 정통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기다려왔던 수많은 소비자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초기형은 210마력의 2.0 세타 TCI 엔진과 303마력의 3.8 람다 엔진을 썼다.

후기형은 트윈 스크롤 터보 기술을 적용한 275마력의 2.0 세타 TCI 엔진과 GDi 기술 도입으로 350마력 최고출력을 자랑한 3.8 람다 GDi 엔진을 사용해 국산차 가운데 최고의 가속 성능을 자랑했다. 여기에 프리미엄 제품인 브렘보 브레이크까지 갖춰 본격적인 고성능차로 탄생한 제네시스 쿠페는 역대 현대차 스포츠 쿠페들이 그랬듯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에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내 최초 수제 스포츠카 '어울림모터스 스피라' (2010~2012)

2010년 국내에 출시된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 사진=어울림모터스이미지 확대보기
2010년 국내에 출시된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 사진=어울림모터스

국내 토종 스포츠카 제조업체 어울림모터스가 선보인 '스피라'는 국내 최초의 자체 개발 수제 스포츠카다.

2001년 프로토자동차 시절 개발한 프로토타입 ‘PS-II’를 시작으로 근 10년에 가까운 기간을 걸쳐 2010년 사전계약과 함께 출시됐다.

어울림 스피라는 ‘국내최초 토종 수제 스포츠카’라는 점이 부각돼 국내 자동차 애호가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스피라는 정통 미드십(엔진이 가운데 자리잡은 후륜구동 방식)의 스포츠카 전형을 보여주는 외관 디자인과 함께 국내 모터스포츠에서 쌓은 경험으로 완성한 경량 탄소섬유 차체 구조 그리고 사양에 따라 400마력 대를 넘나드는 고출력 엔진을 갖췄다. 변속기는 6단 수동 변속기만 적용됐다.

하지만 스피라는 개발 당시 뜨거운 관심이 무색하게 출시이후 부터 많은 비판에 부딛혔다. 당시 기준으로 한 세대 이전 엔진인 현대차 2.7리터 델타 V6 엔진을 사용했고 수동변속기만 선택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자동차 전자장비도 부실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또한 실내·외 상당 수 부품이 기존 다른 자동차 회사 제품을 그대로 사용했고 부실한 조립 ·마감 품질 또한 도마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스피라는 2012년 10월까지 약 31대 판매된 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국내 처음으로 시도된 수제작 소량 생산 스포츠카인 스피라는 혹독한 검증을 거친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량생산 차종만 존재했던 국내 자동차에 업계에 수제작 소량 생찬 차량이 등장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창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lug1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