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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틀에 갇힌 자신부터 깨야 혁신의 장벽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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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틀에 갇힌 자신부터 깨야 혁신의 장벽 넘는다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3)] '혁신'으로 '판'을 바꿔라

개인, '새 판'의 주인공 돼야 삶을 지탱할 힘 커져


기업,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적응해야 지속성장


[글로벌이코노믹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 소장] 20대 중반의 청년 K가 찾아왔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준비와 관련해 고민이 많다고 했다. 뭐 하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것 같고 남들만큼 잘해낼 자신도 별로 없다고 했다. 자신감을 북돋워주기 위해 전공 지식과 대학생활의 경험을 어떻게 기업과 사회에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더 어려워지는 취업의 관문을 뚫기 위해 어떤 역량을 갖출 것인가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취업은 표면적인 고민이었고, 실제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집안에 있었다. 매일 집안에서 아버지와 마주하는 것이 K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집에서 놀고만 있다며 잦은 구박을 받았다.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한 형과 수시로 비교당하기 일쑤였고 집안에서는 이미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모욕적인 잔소리가 이어졌고, 그럴수록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만 갔다.

취업은 그러한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역량을 개발하기보다는 계속해서 피할 곳을 전전하기에 바빴다. 도서관에 앉아서도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취업의 목적도 분명하지 않았고, 기업에서 왜 자신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K는 소위 말하는 ‘루저(Loser)’가 되어 버렸다.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했던 상담이 가정문제 상담으로 이어졌다. K에게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타깝다고 위로를 해줘야 하나, 정신차리라고 자극을 줘야 하나. 머릿속으로 적합한 표현을 뒤섞어가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입을 떼었다. ‘K씨, 독립하세요.’ 짧게 말했다. ‘지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K씨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집안에 갇힌 채로 매순간을 갈등 속에 살아갈 건지, 아니면 독립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 것인지를 선택하세요. 판을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아마도 K의 입장에서는 독립하라는 조언이 냉정하게 들렸던 것 같다. 아니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뜬금없이 집 나가서 혼자 먹고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몇 차례 부연설명을 듣고 K는 돌아갔다. 바로 '환경을 바꾸는 혁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기존에 있어왔던 ‘판’을 바꾸는 것이다. 혁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생각과 행동의 변화는 너무도 많이 강조되어 왔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유명 연사의 강연에는 수백명의 사람이 몰린다. 공감하고, 박수치고, 때론 눈물도 흘리며 이제 자신도 달라져야겠다는 굳센 다짐을 하곤 한다. 마치 종교단체의 부흥회를 마친 것처럼 새로운 깨달음과 힐링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전사적인 혁신워크숍이 열리고, 비전 선포와 혁신선언이 이어진다. 새로운 기획회의가 열리고 신년 모임에서는 패기 있는 ‘파이팅!’이 넘친다. 올해는 정말로 새롭게 변화하고 뭔가가 다 이뤄질 기세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기업의 조직문화와 성과는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가? 그곳에 바로 맹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기에 그렇다.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이 변화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존의 틀에 맞게 짜인 상자에 갇힌 상태로는 아무리 생각과 행동이 변해도 더 이상 성장해 나갈 수가 없다. 구조적인 환경, 즉 ‘판’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다.

다시 K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K가 다행히 취업을 했다고 해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네 형은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한 달 월급이 얼마인데 너는 그것밖에 못 버느냐, 옆집 누구는 번듯하게 회사 다니는데 너는 아직도 계약직이냐’ 등등 앞으로도 겪게 될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질지 모른다. 물론 K의 사례가 예외적인 측면이 있다하더라도 비슷한 유형의 갈등 고리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기혁신을 통해 나를 둘러싼 ‘판’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청년들에게 ‘스스로 독립해서 자기 살길을 찾으라’는 말은 다분히 비판을 받을 소지도 많다. 괜찮은 일자리도 없고, ‘열정페이’가 곧 노동착취와 같은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내가 독립해서 살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남들이 뭔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수록 ‘판’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작아진다. 오히려 혁신의 장벽은 더 높아진다.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판’으로 세상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혁신은 아주 쉽기도 하고 완전히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혁신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기업조직에서 ‘판’을 바꾸는 일은 개인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이라는 이름으로 혁신을 주창하고 새롭게 시작하지만 제대로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변화혁신의 단계마다 저항의 요소가 뒤따른다. 새로운 혁신 비전으로 나아가려는 추진력과 기존 시스템의 말뚝에 묶여진 밧줄이 버티는 힘이 팽팽하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끊임없는 내부갈등과 에너지 소모를 초래한다. 그러다가 지치면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조(自嘲)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거봐, 원래 안 되는 거였잖아’라고 말이다.

조직개발(Organizational Development)의 대가(大家)로 인정받는 독일 출신의 사회심리학자 커트 르윈(Kurt Lewin)은 이를 역장이론(Force Field Theory)으로 설명했다. 조직에서 변화를 추진하는 힘과 저항하는 힘이 팽팽하게 평형상태를 이루게 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안정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내면에는 역동적인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고 했다. 따라서 변화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항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 강한 힘이 작용해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에 머무르려는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직의 변화혁신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어려운 변화혁신을 우리는 왜 이뤄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이 기존에 머물러왔던 환경을 바꿔서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혁신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방향을 찾지 못하면 오히려 안하는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새로움을 향한 도전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자신의 ‘판’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회복이다. 자신의 삶을 지켜나갈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새 판’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지치고 고단한 삶의 위로는 필요하지만 자기 위안을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힐링 쇼핑’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건강이 나빠지면 운동과 치료를 해야지, 아프다고 진통제만 맞고 있을 수는 없다. 기업조직이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상법(商法)에서 설명하는 기업의 특성 중에 ‘기업의 영속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즉, 기업은 수익창출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여 세상에 나온 조직형태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요소는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움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력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혁신으로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개인의 삶과 기업조직의 성장은 담보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변화혁신의 성공 여부는 ‘판’을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 ‘판’을 바꾸지 못한 채로, 언제까지나 책장에 꽂혀있는 괜찮은 책의 제목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승우변화혁신연구소소장
▲이승우변화혁신연구소소장
/글로벌이코노믹 이승우 변화혁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