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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 사냥하고 戰場 누빈 남성적인 행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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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 사냥하고 戰場 누빈 남성적인 행동가

세계문학기행(7)-헤밍웨이(하)

전통가치에 환멸 느끼고 희망 없이 방황


“인생이란 통나무 위에 모인 개미떼의 아우성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과 죽음의 현장에서 피어난 비련의 사랑


작전묘사 치밀한 『…종은 울리나』는 게릴라작전 교과서로 사용


[글로벌이코노믹=김용만 소설가]

헤밍웨이 소설의 인물들은 전통가치에 환멸을 느끼는 비극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으며 희망 없이 방황하는 세대다. 그리고 작품의 문체에서도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어휘와 단어를 사용했고, 묘사와 서술에서도 형용사 같은 수식어를 절제했다. 특히 치밀한 객관적 상황묘사를 통해 인물의 개성과 생동감 넘치는 현장성을 살려내고 있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이며 전쟁문학의 백미로 평가 받는 『무기여 잘 있거라』 역시 고전적 비련의 애정 스토리 이면에는 현대 젊은이들의 방황이 묻어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인생이란 모닥불의 통나무 위에 모인 개미떼의 아우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헤밍웨이가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대변자로 인식된 것도 그런 인상적 발언 때문이다.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 중위는 전쟁의 허위의식을 이런 말로 표현한다.



“나는 신성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영광스럽다는 것에 영광은 없었다. 그리고 희생이란 마치 시카고 가축 수용장과 같았을 뿐이다. 고기는 파묻을 도리밖에 없었지만.”


헨리의 고백형식으로 쓰여진 장편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과 죽음의 현장에서 피어난 비련의 사랑을 그린 걸작으로, 미국 청년이면서 이탈리아군의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프레드릭 헨리 중위와 영국 처녀이면서 이탈리아군의 간호사로 복무하는 캐서린 버클레이와의 격정적인 사랑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유되고 있다. 작가의 체험적 요소가 다분한 이 작품에서도 헤밍웨이는 남녀 두 주인공을 자원(自願)해서 군인이 되고 간호사가 된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연대의식을 자연스레 살려내고 있으며, 묘사에서도 하드보일드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허무적 분위기를 오히려 아름답게 살려내고 있다.

경제공항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하고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동반자문학이 성행하던 30년대에는 헤밍웨이 역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같은 사회현실이 반영된 작품을 썼지만 곧 자신의 창작패턴을 찾게 된다.

1934년, 아프리카 사냥 여행에서 돌아온 헤밍웨이는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을 에스콰이어지에 발표하는데, 미국문학에서 고전(古典)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40년에 출간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네 번째 장편소설로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헤밍웨이는 38세 때인 1937년 <나나>지 특파원으로 스페인 내란에 종군하여, 보수적인 프랑코 반란군과 싸우는 인민전선 정부군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그 당시 헤밍웨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인간조건』의 저자인 앙드레 말로와 내란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로 약속하고 말로는 『희망』을,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다. 약 1년 반에 걸쳐 완성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2차대전 중 군대에서 게릴라작전의 교과서로 사용할 만큼 작전 묘사가 치밀하여 쿠바의 카스트로도 이 작품을 탐독했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대표작들은 거의가 영화화 되었다. 내가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를 본 것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비롯하여 『무기여 잘 있거라』,『킬리만자로의 눈』,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 등 5편이며, 그 중에서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작품은 샘 우드가 감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로버트 죠단 역의 게리 쿠퍼와 마리아 역을 맡은 잉그리트 버그만의 눈빛과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고전 서부극 <하이눈>에서 반해버린 게리 쿠퍼의 비정하면서도 정의로운 이미지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온전히 각인되었던 것이다.

미국 청년으로 몬타나대학의 스페인어 강사인 로버트 죠단은 1년간 휴가를 얻어 스페인 내란에 참가한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인 그는 파시즘과 싸우는 정부군의 일원이 되어 다이나마이트 폭파 작업에 종사하다가, 적의 진격로인 철교 폭파 업무를 띠고 집시 두목 파블로가 이끄는 게릴라에 섞여 현장에 침투한다. 작전기간은 겨우 3박4일. 죠단은 치밀하게 작전을 수행하던 중 미모의 스페인 처녀 마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마리아는 파시스트에게 부모를 잃고 자신마저 폭행을 당한 데다 머리까지 삭발당한 여자였다.

폭파 업무는 파블로의 배신과 시행착오로 위기를 겪으면서도 결국 성공한다. 이제 철수가 문제였다. 아군의 퇴로에는 적군의 사격에 노출된 지형이 있었던 것이다. 엄호사격을 해줘야 겨우 빠져날 수 있는 외길이었다. 죠단은 대원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맨 나중에 말을 몰고 달리다가 총탄을 맞는다. 그는 피를 흘리며 겨우 대원과 합류하지만 남은 생명을 대원들과 사랑하는 마리아의 안전 퇴각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죠단의 영웅적 행위는 인류에 대한 그의 연대의식과 희생정신이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자유민들을 위한 싸움이라고 믿는 그의 희생정신은 스페인내란 참여가 국지적인 참전 의미를 초월하는, 인류애적 항전임을 보여준다. 죠단은 말한다. “나는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하여 싸웠다. 만일 우리들이 이곳에서 이기면 모든 곳에서 이기는 것과 같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목 역시 그런 연대의식을 내포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영국의 종교시인 던(John Donne)의 산문시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는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나』이다. “나도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누구의 죽음도 내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묻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어야 하는 전체주의에 동조하는 작품이어서 비미국적인 작품이랄 수 있다.

헤밍웨이의 또 다른 문학적 업적은 1차세계대전 이후 불어닥친 모더니즘과 그 모더니즘의 미국적 수용에 있다 하겠다. 길 잃은 세대는 모더니즘의 미국판 이야기랄 수 있을 정도로 훼밍웨이의 소설 분위기는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유사하다.

하지만 후기로 접어들면서 헤밍웨이는 인간긍정의 자세로 돌아서게 된다.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환멸과 허무에 초점이 맞춰졌던 그전의 작품과는 달리 후기 작품들은 상호 유대와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시련과 고통을 넘어서려는 극복의지에 초점이 모아진다. 요컨대 엄격한 극기와 인내와 의지력으로 순리를 찾으려는 스토이시즘을 엿볼 수 있는데, 1952년 <라이프>지에 발표한 중편 『노인과 바다』에 그 진수가 녹아 있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에는 헤밍웨이의 본질적인 정신구조가 더 깊이 깔려있다.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고 그 명성의 연결선상에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케 한 『노인과 바다』는 그 만한 무게의 주제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노구를 무릅쓰고 먼 바다로 나가 대어를 낚지만 상어 떼를 만나 고기는 뼈대만 남게 된다. 그래도 노인은 최선을 다했기에 실망하지 않고 다시 어구를 손질한다. 인간의 가장 순결하고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그것은 종교적인 차원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산티아고의 입을 빌어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라고 외친다. 그 말은 오랜 세월 허무와 싸워온 헤밍웨이 식의 육체적 아포리즘, 즉 실천적 용기로 허무를 극복하려 한 헤밍웨이 식의 언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아포리즘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노인과 바다』이고,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헤밍웨이 정신의 상관물이며, 그가 낚은 대어는 그가 노려온 욕망이다. 산티아고 노인의 낚싯배에 매인 채 항구로 끌려오는 도중 상어에게 육탈당한 대어 티부론의 앙상한 뼈는 현실적으로는 패배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의적(秘意的) 승리의 상징이랄 수 있다. 여기에서 비의란 신의 은총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시도하려는 용기를 말하는데, 신의 영역에 도전할만한 그런 용기가 아니고는 허무극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패배나 승리를 사전적으로만 정의할 수 없거니와 패배와 승리의 개념도 일반적 해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가 자신이 잡은 고기를 상어에게 모두 육탈당하고도 태연히 일상으로 돌아간 것도 그가 고기의 육탈을 패배가 아닌 승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온전한 고기로 남아있건 뼈대만 남아있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대어를 낚은 것(허무극복)에만 의미가 주어질 뿐이다.

헤밍웨이가 평생 고심해온 주제는 전쟁이나 투우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고통과 죽음과 허무 등 비극적인 운명과 맞선 개인의 패배, 그리고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적 성찰이었으며, 본인의 삶 또한 그런 작가주제를 능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실천과 독특한 문학적 표현 장치를 동원해 전경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헤밍웨이는 남성적인 행동가였다. 대서양에서 대어를 낚고, 아프리카의 대 평원에서 맹수를 잡았으며, 스페인에서 투우를 즐겼고, 전장을 찾아다니며 의로운 일에 목숨을 내걸었다. 그는 비겁하지 않은 용사였다. 그리고 용기와 의로움이 개척한 인간 실존의 탁월한 모습을 소설 양식을 통해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위대한 작가였다. 개성이 강하고 독선적이면서도 허무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헤밍웨이는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특히 와인 샤토 마고를 즐겨 마셨고 손녀의 이름도 마고라고 지어줄 정도였다. 그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아오다가 요양 중이던 아이다호의 자택에서 자신이 애지중지해온 사냥 엽총으로 자살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당혹과 애도가 전 세계에 물결쳤다. 내가 그의 부음을 들은 것은 공군에 입대하여 대방동에 있는 공군본부 중앙기상부에서 일기예보 관측 교육을 받을 때였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