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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이념 국가 초월해 사랑받는 세계의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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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이념 국가 초월해 사랑받는 세계의 대문호

세계문학기행(10)-신화적 인물 셰익스피어(상)

희곡 38편, 장시 2편, 소네트 154편…다양하고 상충된 평가


『햄릿』관련서 25일마다 한 권씩 출판


숙달된 작법으로 탄생한 비극


본능적인 재능으로 완성된 희극



▲ 셰익스피어 생가
[글로벌이코노믹=김용만 소설가] 해질 녘에야 런던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가 준비한 차를 타고 호텔로 직행했다. 교외 숲속에 있는 호텔이라 분위기가 정갈하고 조용하다. 피곤해서 곧바로 방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9층 라운지로 올라가 와인을 마시다가 잔을 들고 옥상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니 차츰 기분이 몽롱해진다. 별빛 뿌연 옥상이 마치 엘시노 궁정의 망대 같다. 막연히 뭔가가 기다려진다. 드디어 안개가 걷히고 갑옷을 입은 혼령이 나타난다. 그 혼령이 내게 말한다.

듣거라, 햄릿아. 덴마크 국민들은 내가 정원에서 잠자던 중에 독사에

물린 것으로 속고 있다. 내 고귀한 젊은 아들아. 네 아비를 물어 목숨을

빼앗은 독사는 지금 아비의 왕관을 쓰고 네 에미를 왕비로 삼았니라.


서른 한 살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영국의 역사에서 양대 산맥을 이룬 인물이다. 한 사람은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고 한 사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요크(York)와 랭커스터(Lancaster)의 두 왕가(王家)간의 싸움인 ‘장미전쟁’에서 리차드 3세를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헨리 튜더(Henry Tudor)가 튜더 왕조의 시조인 헨리 7세이고, 그 뒤를 이은 아들이 수장령(首長令)을 제정 공표한 헨리 8세다. 그는 시녀 앤 블린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본부인 캐서린과의 이혼을 로마법황이 불허하자 이에 반기를 들고 새로 영국국교(성공회)를 만든 과격한 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앤과 결혼했지만 딸만 하나 낳고 왕자를 두지 못했다는 애매한 죄목으로 왕비를 사형에 처했는데, 그 비운의 1000일의 앤이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다.

▲ 셰익스피어의 고향에 있는 에이번 강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활기찬 시대였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기존질서가 흔들리면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발달, 교육확대, 도시발전 등으로 새로운 변화가 물결쳤다. 신교와 구교가 처참한 갈등을 빚었고 특히 여왕이 신교로 경도되어 있어 구교에 익숙한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여 지상의 통치권을 신으로부터 위임 받은 대리인임을 천명하고 거역하는 자는 엄격히 다스렸다. 그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신대륙 미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왕으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여 스코틀랜드를 영국으로 통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교(Protestantism)가 시민의 일상에 파고든 것도 그 시대였다. 당시에는 르네상스 문학도 꽃을 피웠는데, 스펜서, 모어, 베이컨, 셰익스피어, 벤 존슨, 말로, 릴리, 존 던 같은 문학, 철학, 신학 등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극단도 번창했다. 극장가에 걸인이나 불량배들이 들끓어 시 당국의 규제가 불가피했고, 광대나 배우들이 반기독교적인 언사를 써서 청교도들의 박해를 받았으며, 배우나 극단은 국왕이나 귀족의 하인으로 허가장을 받아야 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불편이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시대야 말로 극문학(劇文學)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극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셰익스피어. 100여 종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는 이념, 종교, 인종, 국가를 초월하여 전 세계인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폴저도서관 조사에 의하면 『햄릿』에 대한 저서만 해도 1877년 이후의 통계에서는 25일마다 한 권씩 출판된 셈이고, 단테,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라신에 대한 모든 연구 문헌을 합쳐도 셰익스피어 한 사람의 연구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애나 인물은 실증할 자료가 별로 없어 거의가 추정에 의해 거론되는 실정이다. 심지어 출생 날짜도 기록이 없어 그가 묻혀 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보존된 세례 날짜를 근거로 추정할 뿐이다. 1564년 4월 26일에 세례를 받았으니 생후 3일 정도가 지나야 세례를 받는 관례로 봐서 4월 23일을 출생 날짜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묘비에 사망 일자가 1616년 4월 23일로 적혀 있어 출생 날짜와 사망 날짜가 같게 된다. 또 그날은 공교롭게도 잉글랜드 수호 성자인 성 죠지 축제일이어서 셰익스피어의 출생일은 의미가 더 크다.

▲ 스트렛퍼드 교회 안에 있는 무덤
생애가 그러하듯 그의 대표작 역시 선정하기가 힘들다. 그가 쓴 희곡 중에서도 어느 작품을 대표작으로 선뜻 내세울지 망설여질 만큼 거의 모든 작품이 단독성을 지니고 있다. 널리 회자되고 있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드』 같은 4대 비극이나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에서 대표작을 고르자니 인간의 존엄성과 인종차별을 다룬 『베니스의 상인』을 비롯하여 『십이야』, 『뜻대로 하세요』,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말괄량이 길들이기』 같은 희극이 머리를 들고, 『헨리 5세』, 『헨리 6세』, 『헨리 8세』, 『리차드 2세』, 『리차드 3세』, 『리차드4세』, 『존왕』 같은 사극이나 『템페스트』, 『페리클레스,』 『겨울 이야기』 같은 로망스도 머리를 든다. 비극 작품을 우선 내세우는 현실에 대해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인 사뮤엘 존슨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이렇게 옹호했다.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숙달된 작법이랄 수 있지만 희극은 그의 본능적인 재능이랄 수 있다.”

본연의 체질에서 우러난 희극의 형성미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작가적 이미지가 비극에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희극이나 역사극이나 로망스보다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이 일반 대중들의 피부에 더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인데, 그의 비극에는 그만한 감동유발 요인이 녹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인간 내면이 욕망하는 본질적인 미학이 내재하기 때문이리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모방(mimesis)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모방은 원인, 과정, 결과의 순차와 같은 인간행위의 모방이지만 단순한 복제형식이 아니라 ‘예술적인 의도’에 의해 재구성되는 창작을 전제로 한 말이다. 그는 구성(plot), 성격(character), 어법(diction), 사상(thought), 장면(spectacle), 노래(song) 등 여섯 가지 요소를 지녀야 비극이 형성되고,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배우와 관객이 공유하는 체험이며, 때문에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함으로써 정서적 순화를 가져다줘야 한다면서 선과 진실이 승리하는 시적정의(poetic justice)까지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세를 대표하는 초서(Chaucer)는 반드시 극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고, 음악적인 율격을 통해서도 비극을 담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품 『캔터베리 이야기들』에서 자신의 주장을 율격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비극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높은 신분에서 불행 속으로 떨어져/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초서는 비극의 원인을 예로 들면서, 천사 루시퍼가 지옥으로 떨어진 원인은 죄악 때문이고, 아담의 경우는 비행 때문이고, 삼손의 비극은 아내에게 힘의 원천을 누설한 실수이고, 네로의 비극은 오만이고, 시저의 비극은 여신의 변덕이 원인이라고 말함으로써 성격 결함 말고도 운명적 요인을 개입시킨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주인공들의 성격 결함이란 데서 아리스텔레스의 비극론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리고 비극의 원인도 뚜렷한 부정적 성격보다도 생활인의 덕목(오셀로의 남을 믿는 성격 등)이랄 수도 있는 사소한 결함이 비극을 초래하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화를 입히는 게 특색이며 그것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다른 점이다. 무력한 인간의 능력이 원인으로 작용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상식적인 인과응보나 시적정의가 들어있지 않아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점이 있고, 그것이 평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희극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비극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어 기괴한 행동의 모방으로 여겨진 고대 그리스 희극이나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현대 희극과도 구별된다.

셰익스피어만큼 비평가들의 견해가 다양한 경우도 없다. 누구는 그의 작품을 기독교극으로 보고 누구는 속세극으로 본다. 그의 성향에 대해서도 누구는 가톨릭 작가로, 누구는 개신교 작가로, 누구는 성공회 작가로, 누구는 반기독교적 작가로 본다. 그처럼 셰익스피어에 대한 시각은 너무 다양하고 상충되기 때문에 브래들리(A.C. Bradley)는 셰익스피어의 사상을 논할 때는 그의 전 작품을 놓고 논해야지 몇몇 작품으로는 통일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롤리(Walter Raleigh)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 규모가 너무 방대해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식별이 어렵다고 말했다. 즉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유형 분류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위의 두 평론가는 비극의 본체론적 입장에서 론리는 구성(plot)을, 브래들리는 성격(character)을 본체로 보았던 것이다.

아무튼 양적 질적으로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작들이고 보니 저자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작품마다 주제가 다르면서도 전문성을 지니고 있어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며 혼자 썼다 해도 학문 수준이 높은 석학에 의해 쓰여진 것이지 셰익스피어처럼 학교교육이 열악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이며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셰익스피어를 스트랫포드의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요즘에는 그런 의문이 논리 정연한 체계를 갖춘 책으로까지 나왔는데, 사실 영국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실제 인물은 ‘여왕의 아들’이란 말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1558년에 등극한 엘리자베스 1세의 아들이라면 그녀의 숨겨진 아들로 소문난 프랜시스 베이컨이 실제 셰익스피어인 셈이다.

버지니아 펠로스가 쓴 책에 의하면 런던의 프랜시스 베이컨 학회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저자가 베이컨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19세기에 창립되었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실제 인물 찾기는 오래전부터 시도되었다.

아무튼 셰익스피어가 여왕의 아들이면 어떻고, 신의 아들이면 어떻고, 보잘것없는 촌부의 아들이면 어떤가. 38편의 희곡과 2편의 장시와 154편의 소네트 등을 쓴 사람을 세익스피어라 지칭하면 될 것 아닌가.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