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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1)]아낌없이 주는 나무 백해영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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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1)]아낌없이 주는 나무 백해영 관장

[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1)]-백해영 관장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미국 옥션하우스 크리스티 10년 전부터 한국작가 소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만남이 갤러리 운영의 보람


▲ John Pai_Yanghan_1988_PHY Collection
[글로벌이코노믹=김민희 예술기획가] 이방인들의 지역,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태원. 그곳은 언제 가더라도 그 곳만의 색깔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언덕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예쁜 하얀 집이 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할 후원자가 있는 ‘백해영갤러리’다.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 들어가니 제프 쿤스의 강아지 작품이 필자를 반겼고, 안에는 전시준비가 한창이었다. 오프닝을 위해 하얀 옷을 멋지게 차려 입은 백해영 관장이 밝은 미소로 맞아주었다.

갤러리에서는 ‘하우스 아트페어’ 와 이태원 프로젝트 ’이타이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우스갤러리라는 특색을 이용하여 다양한 예술을 집에서 좀 더 편안하게 즐기자는 기획으로 시도한 새로운 개념의 아트페어와 이태원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10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이태원’이라는 주제를 주어 갖은 상상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작업을 하도록 한 프로젝트였다.

“이태원에는 굉장히 많은 작가들이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이태원은 그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매우 재미있는 동네다. 그래서 이태원을 주제로 작품의 세계를 풀어보라고 제안했고, 한 마디로 ‘동네 프로젝트’가 되었다.”

백해영 관장은 친절하게 전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 백해영 관장
우연히 이태원 축제와 같은 날 오픈 하였고 미술관에서 연주를 원하는 현악사중주(Maurice Quartet)가 오프닝의 시작을 열어주었다. 그들의 전국 순회 공연 중 첫 연주였다. 또한 마크로비오틱 음식을 하는 그룹이 함께했는데 이들은 전시의 컨셉에 따라 케이터링을 준비하는 자연친화적 그룹이다. 아름다운 장소에 연주와 색다른 음식까지 더하니 금상첨화였다. 사람들이 와서 다방면에 걸쳐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이벤트였다. 작가가 개별적으로 들어오기도 했고, 딜러가 작가들을 데리고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번 아트페어 때 무명의 뉴페이스들을 발굴한 것이 큰 수확이다. 새로운 기획을 통해 젊고 좋은 작가들을 발굴할 때 무엇보다 보람 있다고 했다. 몇몇 작가들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소개할 만한 역량을 갖췄는데 작가들끼리 네트워크도 할 수 있고 컬렉터와도 함께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컬렉터를 찾기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1988년부터 시작한 갤러리는 백해영 관장과 역사를 함께한다. 한번 들어가보자.

백해영 관장은 전남 목포가 고향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육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가족 중 유일하게 예술적으로 재능을 보였다. 다방면에 소질이 많고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에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음악이라는 분야가 절대로 산만해서는 안 되고 집중과 기계적인 연습이 필요하기에 어린 시절은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오직 피아노를 친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 정도 스튜어디스 생활을 했다. 결혼을 하고 뉴욕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뉴욕대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였는데 뉴욕의 미술계가 가장 뜨겁던 시기였으니 백해영 관장도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 백해영 갤러리의 키즈 아틀리에
소호에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었을 때 지나가는 길에 느낌이 가장 좋았던 폴라 쿠퍼 갤러리에 들어갔다. 지나가는 말로 가격을 물었을 뿐인데 두 번째 갔을 때 딜러가 백해영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매우 놀랐고 그들의 뛰어난 비즈니스 능력에 반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구매했다. 그 후 잔 트렘블리, 댄 월쉬 등 폴라 쿠퍼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팅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그녀의 사무실에 그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200%의 신뢰도를 안겨준 갤러리 운영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와서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직업으로 결심하여 갤러리를 열고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전은 생각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바로 미술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초반에 조용하고 사적으로 일하는 원화랑 딜러 정기용 씨와 친구가 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작품을 사기로 약속하여 일정기간 시행했다. 경제적인 능력도 있었겠지만 꾸준한 그 열정이 대단하다. 프랑스 작가들 미라 그리오, 존 배, 박정배 등의 작품을 컬렉팅했다. 또한 서미 갤러리, PKM 등 매우 좋은 갤러리에서만 작품을 사며 고급 서비스를 몸으로 익혔다. 갤러리를 하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구입이었고 좋은 갤러리에서 거래했던 시절은 매우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 찰스 샌더슨의 '연속'
잘 사면 잘 팔 줄 알았는데 팔아야 하는 입장은 완전히 다른 스토리였다고 했다. 갤러리 운영을 하다 보니 힘든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사는 사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한데 생각보다 미술의 가치를 알고 구입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백해영 관장은 주로 다른 갤러리들과 일을 많이 했다. 미국에 살다 보니 그곳에서 쌓은 신용이 생겨 뉴욕에 지사를 열어 한국 갤러리들의 일을 대행해왔다. 뉴욕지사는 7~8년 전에 오피스를 내었고, 한국작가들과 갤러리를 뉴욕의 옥션과 미술계에 소개해왔다. 뉴욕지사를 문 닫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유명 옥션하우스 크리스티(Christie’s)에 10년 전부터 한국의 작가들을 소개했는데 그 역시 어려움이 있었다. 작품이 판매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즉 비즈니스가 되지 않으면 옥션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진행하는 사람 쪽에도 수익을 올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활동이 중요한데, 뮤지엄에 전시되거나 소장된 작품은 더 높은 가치를 띄기 마련이다. “한국 작가들을 돕기 위해 한국의 기업들이 작품을 컬렉팅해서 뮤지엄에 기증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작가들이 세계 미술계에서 입지가 높아진다. 그러나 기업들이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개인을 위해서도 서로가 ‘윈윈’ 하는 것인데 잘 모르고 있다. 돈이 있어도 마인드가 아직 없다.”

▲ 존 트렘블레이의 '플러그-인'
백해영 관장은 부자들도 3대에 와서야 문화에 관한 의식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1대에는 컬렉터가 거의 없고 그것이 2대까지 이어지다가 3대에 와서야 컬렉팅과 후원에 대한 의식이 조금 생긴다. 즐기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백해영 갤러리는 상업 갤러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뮤지엄에 가까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의 갤러리 공간은 77년부터 생활했던 공간을 개조하여 35년째 사용하고 있고, 해외 문화교류를 위한 한국 문화교류단체(Korean Cultural Council, KCC), 한국에 나와 있는 해외 인사들, 대사관 및 외교관 그리고 외국계 CEO를 위한 ‘문화 라운지(Cultural Lounge)’, 그리고 ‘키즈 아뜰리에’ 가 있다. ‘키즈 아뜰리에’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손주들 때문이다. 순수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의 창작력도 놀랍고 아이들에게 작가들과 직접 만나는 미술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작업하는 것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작가들이 있어 스카우트했고 다른 기관보다 많은 액수를 주며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다. 아이들도 매우 좋아하는데 부모가 미술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싼 가격을 원하는 부모가 많은데 좋은 교육의 차별성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앞에 닥친 것에는 엄청난 액수를 투자하는데 아이들을 위한 미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엄마들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 댄 왈쉬의 '경계'
또한 백해영 관장이 아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갤러리 오픈할 당시부터 운영하고 있다. 해외 유명작가를 초청해서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신이 나서 그녀가 초대하고 싶은 작가들을 실컷 초대했고, 그 중에는 빛의 작가 제임스 토렐(James Turrell, 1943), 미디어 아티스트 찰스 샌더슨(Charles Sandison, 1969), 2011 싱가포르 비엔날레 큐레이터 트레보 스미스(Trevor Smith)등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그녀에게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초대하는 작가들을 위해 하이야트 호텔과 레지던시 공간을 제공해 주었는데 보통 레지던시 공간을 더 선호했다. 가정에 머무르는 기분이 들고 아침에 남산에 운동도 다녀올 수 있고 홈메이드 음식까지 제공된다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작가들과 24시간 밀착해 있다 보니 더 친밀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작가들에게 지금 말하는 컨시어지 서비스(Concierge Service)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표는 물론, 숙식과 용돈까지 주며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그렇게 후원해주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래야만 하는지 알았다. 그때 맺었던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가뿐만 아니라 음악을 하다 보니 런던 필하모닉이 오면 디너파티도 열어 주었다.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는 좋은 사람들,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보람된 일 중 하나다. 갤러리 위치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원장, 대사 등 네트워크를 풍부하게 구축할 수 있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프라이빗 딜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 미국에서는 프라이빗 딜러에 대한 존경심이 높다. 좋은 작품을 소개받기 위해서도 그렇다. 좋은 클라이언트에게는 좋은 작품이 가기 마련이다. 그 경쟁이 치열하다. 돈을 깎기는커녕 더 주고 그 작품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컬렉팅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매너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 이타이즘 작품
컬렉터에도 급이 있다. 높은 레벨로 올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세계적으로 견주어 손색없는 모범적인 후원자와 컬렉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길을 따르는 제 2, 제 3의 높은 레벨의 후원자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사면서 익혀야 한다. 머리로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회는 사지 않는 사람에게 오지는 않는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백해영 관장은 젊었을 때 최고의 화려한 생활을 누려보았는데 다 별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허무하도다”라고 토로한 솔로몬 왕의 말이 생각났다. 성격도 급했고 20대에 꼭지점을 찍으려고 했는데 생을 길게 보고 나이에 맞게 자라나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 최고라는 그녀는 슬하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일을 물려주고 싶었으나 자식들은 관심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이제는 지치기도 해서 내려놓고도 싶고 취미가 조용한 시골이나 오지에 가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고백했지만 백해영 관장은 재능있는 젊은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아이디어와 계획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이런 열정으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살리며 30년이 넘게 갤러리를 운영해 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백해영 관장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올랐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다 주고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주는 사랑이 더 기쁨을 안겨준다고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한 쪽만 일방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양을 돌려줄 수는 없어도 감사함으로 진지하게 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김민희 예술기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