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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14)]허름한 옷차림의 미술품 컬렉터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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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14)]허름한 옷차림의 미술품 컬렉터부부

[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4)]-허버트&도로시 보겔 부부(상)


허름한 옷차림의 美 최고 유명 미술품 컬렉터부부



'부자들만 될 수 있다'는 편견 거침없이 깨뜨려

적은 수입 불구 약혼 선물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 구입 '안목'


동시대 외면받던 미니멀리즘과 개념작품들에 주목


컬렉션 2500점 작품 기증 美 50개주 미술관에 50점씩 '50×50' 프로젝트 큰 의미




▲ 보겔 부부 아파트먼트 Courtesy of Washington Post

[글로벌이코노믹=김민희 예술기획가] 하얀 백발의 노부부가 갤러리로 들어온다. 조그만 키에 허름한 옷을 입을 입고 있는 그들을 보면 언뜻 스치는 생각에 단순히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부부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라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세계적인 컬렉터는 부자들만 될 수 있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허버트와 도로시 보겔 부부(Herbert·1922~2012 & Dorothy Vogel·1935~, 이하 보겔 부부)는 그 사실을 거침없이 깨뜨렸다. 가난한 노동자도 열정과 노력을 가지고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노동 계급의 아트 컬렉터’라 불리는 보겔 부부는 1960년대 이후의 미국 미술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미술품 수집가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 미술 컬렉터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바꾸어 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늘 손을 꼭 잡고 갤러리와 뮤지엄, 미술가의 작업실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던 부부였는데, 올해 7월 허버트가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도로시가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보겔 부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 한 회로 끝낼 수가 없어 두 회로 나누어 연재하도록 하겠다.

▲ 마틴 존슨 보겔 컬렉션보겔 부부는 둘 다 부자가 아니었다. 러시아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뉴욕 할렘에서 자라난 허버트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1979년 은퇴할 때까지 우체국에서 야간에 편지를 분류하는 일을 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역시 뉴욕에서 유대인 상인의 딸로 태어난 도로시는 도서관 과학을 전공하여 석사까지 공부한 후, 뉴욕 브루클린 공립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1962년 결혼한 후 그들은 허버트의 권유로 뉴욕대에서 함께 페인팅 수업을 들었으나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며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컬렉션’을 세운다는 생각보다는 그들이 함께 집에서 살고 싶은 작품들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션을 이루게 된 시작이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는데 결혼 후 계속 살았던 조그만 아파트에서 물고기, 거북이, 고양이들을 키우며 유명 미술가들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이 선택하고 평생 함께한 미술가와 작품들이 그들에겐 자식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결혼 전에 허버트가 수집한 것 중 하나는 기스페 나폴리(Giuseppe Napoli·1929~1967)의 작품이었다. 부부는 약혼을 기념하기 위해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적은 수입으로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참으로 세련된 약혼 선물이다. 결혼 후 첫 공동 수집 작품은 미국 정크 아트의 대표주자 존 챔버레인(John Chamberlain·1951~)의 ‘차 사고 파편들(Crushed Car Parts)’이었다. 미술가들의 드로잉 작업에 중점을 맞추어 수집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예술적 취향에 걸맞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다른 종류의 미술작품들도 지체 없이 구입했다. 예를 들어 뉴저지 출신 마틴 존슨(Martin Johnson·1951~)의 작품은 드로잉, 페인팅, 조각, 콜라주와 사진으로 이루어진 종이 작업 등을 모두 가지고 있다.

▲ 로버트 배리 - 보겔 컬렉션보겔 부부의 제한된 수입으로 도로시는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했고 허버트의 수입으로는 모두 미술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허버트의 수입이 당시 연봉 2만3000 달러였는데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거나 여행가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미술품 수집을 선택한 것이었다. 한 옷을 40년 동안 입었다고 하니 알만하다. 그들은 동시대 미술 세계의 최전방에 있는 작품들에 집중했다. 가격이 낮은 이유도 있었고, 즐길 수 있는 기간이 길다는 시간적 투자가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돈의 액수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작품을 선택할 때 매우 신중을 요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즐기지 못하는 동시대 작품들을 보는 예술적 감각과 눈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들이 결정한 수집품의 대부분은 그 당시 주목 받지 못했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작품들이었다.

보겔 부부는 무명의 젊은 미술가들을 위해 조심스럽게 경제적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 자신들의 삶도 빠듯했을 텐데 그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들의 후원금을 받았던 미술가들 중 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들도 있는데 로버트 배리(Robert Barry), 솔 루잇(Sol LeWitt), 에다 레노프(Edda Renouf), 그리고 리처드 터틀(Richard Tuttle)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보겔 부부와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부부는 친해진 미술가들의 작업실에 전화해서 어떤 새로운 작품을 하고 있는지 자주 확인했다고 하는데,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그들의 잔소리가 발전된 작업을 위한 촉매제의 역할을 했을 것 같다.

보겔 부부는 결코 자본적 투자를 목적으로 수집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빠른 수익을 내는 대신 긴 시간을 소장할 것을 생각해 작품을 구입하는 고유의 투자 기법을 따랐다. 그러나 컬렉션을 절대 되팔지 않았다. 보겔 부부의 수집 규칙은 간단했다. 그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구입하는 것이었고, 쉽게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범위에 있는 액수여야 했고, 그들이 살고 있던 작은 원 베드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어야 했다. 작품은 주로 미술가에게 직접 샀는데 때때로 할부로 구입하기도 하였다. 운반은 전철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따르면 보겔 부부가 유명한 환경 미술가 크리스토(Christo·1935~)에게 콜라주 작품을 받았는데 고양이 의자를 교환한 것이라고 했다. 미술가와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예다.

▲ 마틴 존슨 조각 - 보겔 컬렉션그들만의 전략과 신중한 선택은 결국 열매를 맺었다. 보겔 부부가 미국에서 가장 주요한 동시대 미술 컬렉터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무려 5000점이나 되는 귀중한 컬렉션이 그들의 작은 집의 벽의 곳곳, 옷장 안이나 심지어 침대 밑에도 수두룩하게 싸여 있다. 작품들 때문에 침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미술가 친구인 척 클로스(Chuck Close·1940~)가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미술가들의 작품이 드로잉, 조각품, 페인팅, 그리고 프린트 등 다양한 매체로 이루어져 있고, 연대별로도 잘 구성되어 있다. 1975년에는 그들의 수집품으로 로어 맨하탄에 있는 클락타워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열기도 하였다.

1992년 보겔 부부는 그들이 수집한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전부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내셔날 갤러리가 입장료를 무료로 바꾸었고, 기증된 작품들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식과 같은 그들의 소장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기를 바랐다. 처음 기증을 약속하고 나서 보겔 부부의 컬렉션이 몇 배로 늘어나자 한 미술 기관에 그 많은 작품들을 소장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2008년 4월, 내셔날 갤러리는 놀라운 발표를 했다. 보겔 부부의 컬렉션 중 2500점의 작품들을 미국 전 지역 50개 주에 있는 각 뮤지엄에 50개의 작품씩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50x50’이라는 이름의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 기관과 몇몇 비영리 문화예술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 존 챔버레인 - 보겔 컬렉션보겔 컬렉션에 속해있는 177명의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전 지역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보겔 부부가 직접 동시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기 어려운 뮤지엄을 선택했다. 기증받은 뮤지엄에서는 그 작품들을 기념하는 전시가 바로 이루어졌다. 허버트는 휠체어에 타고 나이든 부부가 각 뮤지엄을 방문해 일일이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고 전시 디자인에도 함께 참여 하는 열정적 모습을 보며 관계자들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보겔 부부는 전통적인 컬렉터가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평가하기를 어떤 작품들이 결국 문화적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그들만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은 매우 독특하고 그 누구도 모방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들의 ‘예술적 눈’으로 철저히 그들만의 원칙을 지켰기에 전쟁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도로시는 이야기 한다. “미술품들은 같이 살아봐야만 합니다. 같이 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볼 수 있는 눈이 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 즐거움을 찾게 되기는 힘이 듭니다. 따라서 빚을 내야 할 만큼 비싼 작품으로 수집을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월급 범위 내에서 찾아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 솔 루잇, 검정 바닥 구조, 1965 - 보겔 컬렉션일본 여성인 미구미 사사키(Megumi Sasaki)가 보겔 부부의 컬렉팅 열정에 감동해 그 이야기를 ‘Herb & Dorothy’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을 정도다. 이 여인은 영화나 미술품 컬렉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보겔 부부의 이야기를 우연히 TV에서 보고 난 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로 여러 국제필름페스티발에서 우승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상영이 끝난 후에는 매번 기립박수를 받았다. 필름은 세계를 순회하며 상영되었고 보겔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미술품 컬렉팅에 대해 바라보고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김민희 예술기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