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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같은 푸른 삶 작가들에 선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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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같은 푸른 삶 작가들에 선한 영향

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7회)-유성연 명예회장&유상덕 회장

서예‧바둑 선호, 독서 즐긴 선비의 풍모 지녀


작품 통해 사업 어려움 치유, 안정 되찾아


▲고송은유성연명예회장(왼쪽)과유상덕회장
▲고송은유성연명예회장(왼쪽)과유상덕회장
[글로벌이코노믹=김민희 예술기획가]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

유자효 시인의 시 ‘소나무’다. 소나무 숲은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은은하면서도 강인한 기운을 풍긴다. 한민족 문화의 큰 기둥이며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소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오신 분이 있다. 바로 삼천리그룹의 창립자 고 송은 유성연 명예회장(1917~1999, 이하 유 명예회장)이다. 필자와 프라다 트렌스포머 프로젝트로 인연이 있는 ㈜로렌스 제프리스가 전시 프로그램을 (재)송은문화재단과 공동 운영하고 있는 송은 아트스페이스를 방문하게 되면서 유 명예회장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송은 문화재단의 설립자인 그는 소나무 송(松)에 숨을 은(隱)이라는 호처럼 묵묵하게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하여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온 후원자였다. 유 명예회장이 작고한 후 현재는 아들 유상덕 회장(1959~)이 그의 뜻을 이어오고 있다.

▲고석민TheSquare
▲고석민TheSquare
추위가 매섭게 몰아친 지난해 12월 어느 날 청담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 송은 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건축가 민영백의 설계로 탄생한 감각적이며 세련된 하얀 건축물에 들어서면 짐 다인의 작품인 사람 키 만한 하트 조각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다. 정원에 놓여있는 태국 식 하얀 소파베드는 마치 휴양지에 온 듯 필자의 마음을 열어주었다. 1층에는 퓨전 레스토랑 ‘Chef K&R’이 자리잡고 있다. 5층으로 올라가니 송은 문화재단에서 2001년 송은 미술대상의 시작과 함께 지금까지 12년의 역사를 함께 해온 유형정 큐레이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누구보다도 재단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언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커피를 함께 마시며 유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선물 받고 재단의 이모저모와 유 명예회장, 그리고 유상덕 회장의 미술사랑까지 훈훈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재단의 정신적 지주인 유 명예회장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권재나발렌타인
▲권재나발렌타인
유 명예회장은 함경도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에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명민하고 똘똘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의 거듭된 사업실패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나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형제 중 유일하게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사범대학에 들어갔으나 예술과 철학에 심취해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고 화가와 같이 독특한 인생을 살고 싶어했던 꿈 많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훌륭한 스승이었던 고바야시 선생을 만나게 된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워 명절에도 집에 갈 수가 없자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취해 점호에 나갈 수가 없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엄격했던 학교 규율에 위배되어 퇴학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는데 용기를 내어 고바야시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 명예회장에게 선생은 말했다. “어떤 징계를 받더라도 그것은 인생 전체로 볼 때 큰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이 일로 인해 네가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네 인생은 잘 될 수도, 잘못 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변화의 계기가 있게 마련인데, 그 계기를 생의 플러스 쪽으로 이끄느냐 마이너스 쪽으로 가져가느냐는 전적으로 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스승의 말은 그에게 인생을 넓게 보는 방법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인생 항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이후 그의 삶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권재나7송이부케
▲권재나7송이부케
스승에게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교편을 잡게 된다. 그 정도면 현실에 안주할 만도 한데 그에게는 늘 새로운 시도가 끊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사업가적인 피가 진하게 흘렀었나 보다. 해방이 된 후 6년간의 교직 생활을 뒤로하고 소련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가게를 운영했으나 6·25 전쟁이 터지게 되어 비극적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남쪽으로 건너와 거제도에서 피란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와중에 휴전이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가족을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외롭고 적막했던 시절 방탕한 시간을 보내다가 고향 친구였던 고 이장균 명예회장(1922~1997, 이하 이 명예회장)을 극적으로 조우하게 되었다. 둘은 바로 의형제와 같이 서로 아끼며 가까워졌다. 1955년 함께 삼천리그룹을 창업하게 되었고 연탄사업을 통해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유 명예회장은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집도 신당동에 나란히 자리잡아 이 명예회장과 옆집에 살며 우정을 과시했다. 기업을 설립하는 과정 속에서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성실을 기본으로 원칙을 철저히 지켜 의형제 경영의 역사를 이루어 낸 것이다. 지금은 두 집안의 아들들이 2세 경영에 나서, 유 명예회장의 아들 유상덕 회장은 ㈜삼탄을 경영하고 있고, 이 명예회장의 아들 이만득 회장은 ㈜삼천리를 경영하고 있는데 사업의 방향이 다르고, 실적이 다르더라도 수익금은 무조건 5대 5로 나누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대를 이어 여전히 동업으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참으로 대단하다.

▲한경원Ash-39
▲한경원Ash-39
유 명예회장은 인문학자적인 소양을 가지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늘 소식하며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과 인품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서예와 바둑을 즐기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며 선비와 같은 삶을 살았던 그은 유독 한국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풍경화를 보며 사업을 통해서 받는 여러 어려움을 작품을 통해 치유받고 안정을 찾았다.

유 명예회장은 본인과 같이 어려운 환경 때문에 미술가의 꿈을 꺾는 젊은 친구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1989년에 송은 문화재단을 설립하였는데 대를 이어 지금까지 꾸준히 유능한 미술계 인재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2000년도까지는 젊은 미술인의 전시 및 연구활동을 후원하는 지원사업이 주된 사업이었다. 재단사업 시작부터 화가들에게는 아름아름 알려졌지만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유 명예회장의 성품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겸손했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 취재를 요청해와도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재단 실무자와 현 유상덕 재단이사장은 고심 끝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화가들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설립자의 뜻을 기리면서도 보다 공정성 있는 후원을 위해 2001년 송은 미술대상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 상이 가지는 명예를 통해서 미술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취지였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예전과는 다는 차원에서 미술가들을 후원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술상 10주년을 기념하며 2010년 청담동에 송은 아트스페이스를 개관하게 되었다.

▲안두진TheCave
▲안두진TheCave
이 공간의 목적은 ‘송은’ 이라는 이름 자체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어 미술가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발판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 관련 기획을 추진하고 있고 무료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해 대중과의 편안한 소통을 꾀하고 있다. 지역 특성상 학생들이나 일반인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처음 취지를 이루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조금 있지만 흥미로운 새로운 프로그램과 실험적인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를 바라고 있다.

송은 문화재단은 ㈜삼탄 본사 1층에 ‘송은 아트큐브’라는 갤러리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개인전의 경험이 없는 신인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 전시회 도록 제작도 지원해준다. 송은 미술대상작가나 송은 아트큐브 선정 전시작가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해외 기관에서 손님이 올 때 적극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작가 고석민은 뉴욕API 갤러리와 연결되어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현지에서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 한파와 같은 뉴욕의 경기 속에서도 작품이 많이 팔렸다. 한국화 작가 한경원도 추진했던 기관의 소개로 마이애미 아트페어의 한국특별관에 초대되어 전시를 준비중에 있다.

송은문화재단의 또 다른 중요한 프로그램은 매년 열리는 국가 프로젝트다. 특정한 국가의 문화정부기관이나 대사관을 통해서 후원을 받고 그 나라의 젊은 작가들을 초대한다. 전시기간 동안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 프로그램을 같이 개최한다. 지난해 초에 ‘스위스 인 송은’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전시 공간에서는 ‘스위스의 젊은 작가전’이 열렸고 1층 레스토랑에서는 스위스 메뉴를 판매했다. 스위스의 디자인과 건축에 관련된 강연도 열렸는데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해엔 ‘프랑스 인 송은’을 진행한다. 지금은 국가들과 연계해서 그 나라의 작가들을 초청하고 있지만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해서 한국 작가들을 해외로 내보내 전시하는 것이 숙제다.

그 외에 한국작가 개인전, 해외작가 개인전, 그리고 컬렉션 전시가 있다. 컬렉터를 소개하고 컬렉션을 보여주는 것이 현대미술의 다양한 지변을 소개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추진하고 있다는데 후원자를 소개하는 필자로서는 매우 반가운 프로젝트다. 작년 PPR그룹 명예회장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전에 이어 지난해는 ㈜삼탄 50주년을 기념하여 송은 문화재단 컬렉션 전시가 1, 2부로 나뉘어 열렸다. 1부는 한국 작가들, 2부는 해외 작가들이었다. 특히 1부 전시를 통해 재단의 설립 취지와 지원사업 전망을 시각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서 의미가 깊었다고 한다.

▲데미안허스트의LostMemories
▲데미안허스트의LostMemories
유 명예회장이 처음 소장했던 작품은 조각가 강관욱의 할머니 두상 조각상인데 이북에 계셨던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서 그리운 마음에 구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 명예회장은 적극적으로 작가들의 작업이나 전시에 참여하는 것 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실무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 전통은 현재 유상덕 회장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들이라는 생각에 앞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작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젊은 미술가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게 되면서 미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어져 그들의 작품을 사기도 하고 송은 미술대상을 통해 수상작품이 귀속되며 재단의 컬렉션이 갖춰지게 되었다.

유상덕 회장은 동시대 미술에 관심이 많은데 미술전공은 아니지만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세련되고 화사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송은 문화재단 컬렉션전 2부였던 해외소장품 전에서 그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다. 전시품 중 시선을 사로잡았던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진열장 작품은 ㈜삼탄과 공동소장 작품인데 석탄과 다이아몬드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서 의미가 있어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원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처럼 송은이 후원하는 한국미술가들도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 같다.

▲앤드워홀의마를린먼로
▲앤드워홀의마를린먼로
송은 문화재단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기관을 대표하는 탑 5안에 드는 것이 목표다. 국제 인사가 왔을 때 먼저 소개될 수 있는 공간, 주변 이웃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랜드마크 같은 기관이 되는 것이 사회공헌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송은 문화재단의 앞날이 매우 기대가 된다. 유 명예회장도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