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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며 작품인 '소리조형물'로서의 오르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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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며 작품인 '소리조형물'로서의 오르겔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0)] 오르겔 구상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늘 들고 다니는 배낭 속에는 항상 빼놓지 않고 다니는 것이 있다. 스케치북과 작업노트 두 권이다. 매일 일기를 쓰듯 하지는 않지만, 이 두 권은 제작실에서나 여행을 갈 때 반드시 가지고 다니는 물품이다.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싶으면 바로 스케치를 하거나 기록을 해놓기 위해서다. 어떤 대상을 정해놓지 않는다. 아무거나 그린다. 그것이 자연의 경관일 수도 있고, 건축물이거나 쇼윈도에 눈에 띄는 그릇이나 의자 같은 물품일 때도 많다.
오르겔 구상은 꼭 프로젝트가 있을 때 시작하는 건 아니다. 정한 장르가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적듯이 메모한다. 오르겔도 같다.

그날그날 일어난 일에 대한 일기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색깔에 대한 얘기나 음악이나 건축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옮겨놓기도 한다.

▲미래의오르겔
▲미래의오르겔
그 외에는 되도록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다. 그 가운데 몇몇을 꼽자면, 황학동을 들 수 있겠다.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이곳은 100여년 사이의 시간이 뒤섞여 공존하는 곳이다. 오르겔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많은 느낌을 받는 곳이다.

청계천과 을지로는 지금도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전기, 철가공, 부품은 거의 이곳에서 구입하거나 철 작업은 대개 이곳에서 작업한다. 웬만한 것은 생각하고 주문한 대로 거의 만들어지는 곳이다. 구로와 성수동, 미로같이 복잡한 이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보물을 만난 듯 뜻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르겔을 제작하는 데 있어 딱히 어떤 부품이라도 정해진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재료가 부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품을 많이 팔면서 돌아다닌다.

그 외에는 되도록 많이 보고 들으려한다. 그중에 책방, 갤러리, 박물관, 음악회는 기회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가곤 한다. 특히 책방은 날을 정해 작정하고 간다. 오르겔도 어찌보면 건축물과 일맥상통하기도해 건축관련 잡지와 디자인 책들을 자주 접한다.
이런 습관은 나의 호기심도 작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마이스터를 닮아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는 늘 여러 예술가들과 만나 토론을 하거나 협업을 같이 하곤 했다. 그것이 제작실에 오르겔을 통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표현되어질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킨 기억이 새롭다.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그 가운데에는 화가, 무용가, 음향가, 건축구조, 디지털 칩을 만드는 사람, 주물, 철가공, 심지어는 도움이 될까싶어 사진가, 무용가로 발을 넓힌다.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그들의 전문분야에 대해 많이 물어보고 조언을 얻으면서, 혹시라도 무언가를 얻지 않을까 싶어서다.

▲미래의오르겔
▲미래의오르겔
물론 그럴 때마다 당연히 글로나 그림으로 글을 남긴다. 그러다보니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그린 그림들이 꽤 쌓여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 가운데에는 DMZ에서의 'The War'라는 아예 제목까지 붙인 오르겔, 하울의 성 같은 오르겔, 범선, 샹들리에 등 세상에서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간 화폭에만 의존했던 그림이 현대 미디어를 만나 TV를 매개로 새로운 비디오 아트를 만들어낸 백남준처럼 지금까지 악기로서의 존재만 부각되고 인식되어져왔던 오르겔이 이제는 오히려 오르겔이기에 가능한 예술작품으로서의 '소리 조형물'로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림은 그 자체로만으로는 우리에게 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주기에는 너무 정적이다. '소리'는 그 그림에 감동을 배가시킨다.

한국에는 이제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을 만큼 최고의 예술가, IT 기술자들, 디자이너, 음악가들이 있다. 한국에서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전혀 새로운 예술로 탄생될 것을 생각만 해도 흥분이 절로 된다. 마음은 벌써 저 만큼 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