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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하고 장쾌한 소리를 뿜어낼 대나무파이프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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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하고 장쾌한 소리를 뿜어낼 대나무파이프오르간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3)] 대나무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담양에서 세 사람이 양평의 제작실로 찾아왔다. 공학교수, 컴퓨터전문가 그리고 음향가다. 사실 내가 먼저 찾아 나섰던 까닭으로 인연이 되어 온 것이다.

이들은 음악가가 아니면서도 대나무 소리에 대한 갈급함을 오랜 전부터 고민하고 수 년 전 부터는 실현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담양 군청에 큰 마음 먹고 편지를 쓰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을 알게 되었고 얼마나 큰 힘과 위안이 되었는지 바로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 독일에서 파이프오르간을 공부한 후 한국에 돌아오면서 언젠가는 대나무로 된 파이프오르간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다. 이제 서서히 그 꿈을 실현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독일에서 제작가로 활동할 때 간접적이나마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에 대해 경험한 적이 있다.

필리핀의 라피나스 성당에 있는 기념비적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나의 마이스터가 다시 보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작업에 참여했던 장인들의 얘기를 수집하고, 기록하면서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우리의 손으로 만들고 싶은 꿈을 키웠다.

지금 작업실 한 켠에는 담양에서 온 대나무가 잔뜩 쌓여있다. 아침에 제작실에 들어서자마자 보게 되는 대나무에 가슴이 절로 뛴다. 이제서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소리작업을 위해 그들 세 사람과 함께 현재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오래전 청년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대금도 다시 꺼냈다. 쌍골죽으로 만들었다는 이 대금은 지금까지도 늘 나와 함께 해왔다. 요즈음은 그 덕(?)에 다시 대금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마음은 성급하여 대나무로 이루어진 스케치들을 시작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군더더기 없는 주석파이프 대신 휘어진 듯한 대나무로 이루어진 파이프군들. 위로만 쭉쭉 뻗은 북유럽의 낙엽송보다 약간은 구불구불하게 올라가는 한국의 소나무.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연스럽고 멋있을까에 벌써 흥분이 된다.

소리는 또 어떤가. 예쁜 소리들로 가득한 유럽의 전형적 메탈파이프보다 약간은 허스키하고도 터프한(?) 소리를 가진 대나무소리는 때로는 퉁소처럼 투박하고 거친 소리로, 때로는 대금처럼 장쾌한 소리를 뿜어낼 것이다.

이렇게 소리에 자신하는 이유는 오동나무로 12개음의 파이프를 시험적으로 제작해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동나무는 대체적으로 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 자란다. 한국의 오동나무는 색깔이 대단히 아름답고 생명력이 뛰어나다.

파이프 모양은 유럽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완성된 것에서의 소리의 차이는 그 문화만큼이나 다르다. 스스로도 그 소리에 놀라울 정도다.

하물며 순수하게 대나무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질 그 소리는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 정조 때 파이프오르간 제작을 하고 싶어했던 연암 박지원도 이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이 소리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면 어울릴까. 클래식보다 먼저 ‘고향의 봄’ ‘엄마야 누나야’가 언뜻 떠오른다. 흙내음 나는 이 소리 생각만으로도 감동이 찾아온다.

새로운 예술 세계로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그 모습과 소리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생명력에 빛을 불어넣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