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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한 폭의 산수화에 담은 액자형 오르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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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한 폭의 산수화에 담은 액자형 오르겔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4)] 산수화 오르겔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오는 9월이면 그토록 염원했던 오르겔 한 점이 완성된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2001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다.
시골(?)교회의 한 목사님과 만나게 되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목사님은 한 작은 시골의 청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서울에 치우쳐 있는 문화의 혜택을 그 일부라도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보지 못했던 문화를 접하게 함으로써 바깥세상에 대한 큰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였다. 그런 가운데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2008년 이 작은 교회를 위해 파이프오르간의 밑그림을 완성하였다.

마치 갤러리를 들어설 때 액자에 담긴 그림을 대하듯, 자연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오르겔로 표현하고 싶었다.

▲경기도양평군국수리의국수교회에들어설'산수화오르겔'
▲경기도양평군국수리의국수교회에들어설'산수화오르겔'
나는 유럽에서 자존심이 강한 그들의 역사를 온전히 담아낸 파이프오르간을 많이 보았다.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파이프오르간. 볼 때마다 그 장대함에 어떤 때는 기가 죽었다.

30~4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국에 많은 오르겔들이 세워졌다. 해외에서만 보던 악기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신기함에 지금까지 오고 있었지만, 유럽이나 북미의 제작가들이 그동안 늘 해오던 고정된 그들의 생각으로 소리와 작품을 만들다보니 아직까지 우리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유럽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오르겔과는 전혀 다른, 우리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오르겔을 지을 수 없을까? 늘 나의 머릿속에서 이 과제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 문화토양에 어울리는 그런 오르겔과 미래 지향적이고도 예술적 감흥이 넘치는 또 다른 세계로의 오르겔을 지향하고 싶었다.
▲산수화오르겔의구상스케치
▲산수화오르겔의구상스케치
오르겔은 소리가 나는 악기인 동시에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형적 모습으로서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해왔는지 픽션과 팩트가 뒤섞여 얘기하는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런 조형적 모습은 어떤가?”

누가 프로젝트를 맡긴 것도 아닌데, 언젠가 이 꿈이 실현되겠지, 하고 상상하며 생각은 계속 꿈틀댄다. 세 개의 크고 작은 산, 봄, 밤하늘, 별, 능선, 남한강, 물의 잔향, 뻐꾸기…. ‘산수화 오르겔’이라 별명이 붙은 이 오르겔은 이렇게 태어났다.

‘산수화 오르겔’은 정대칭의 모습을 과감히 벗어버렸다. 가로 6m, 높이 5m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액자 형태의 오르겔 케이스 전면은 연한 '겨자 색'을 입힌다. 봄을 나타내고 싶었다. 오르겔에 색을 입힌다는 것은 일종의 파격이다.

세 개의 산은 소리나는 파이프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산들의 선을 파이프관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것과 기능적으로도 함께 만드는 것에 꽤 시간이 걸렸다. 강을 표현하는 것이 의외의 난관이었다.

오랜 궁리 끝에 소리가 생성되는 파이프들의 입을 금색을 입히는 것으로 하고, 길고 짧은 파이프의 입들을 가지런히 일률적으로 하니 조용히 흘러가는 강이 되었다. 그 밑으로 물의 잔향은 덤으로 얻었다.

파이프로 표현한 능선 저 쪽 끝에 뻐꾸기가 앉아 있다. 물론 소리가 나는 뻐꾸기다. 이 뻐꾸기는 아직도 조각중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제작소 근처에 뻐꾸기가 많이 산다. 제작한 파이프를 시험삼아 불어보는데, 진짜로 뻐꾸기가 화답한다.

자연의 소리를 한 폭의 자연에 담은 ‘산수화 오르겔’. 문을 들어설 때 뜻밖의 풍경을 접하면서 그동안의 혼탁함이 마음의 큰 기쁨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