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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로 '빨간구두 아가씨'를 연주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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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로 '빨간구두 아가씨'를 연주한다면…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5)]-오르겔곡의 레파토리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차 한 잔과 함께 바하의 오르겔곡 Praeludium und Fuge D-dur(BWV532)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어찌나 두 개가 잘 어울리는지 마치 오래전부터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바하는 더욱 또렷하게 귓전에 울렸고, 알 수 없는 이름의 차는 그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미술관에서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그린 그림을 무례하게도 그저 휙 하니 보는 경우가 많다. 작가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에서의 그림을 접할 때면 왠지 모르게 감동이 일어난다.
▲경기도양평국수리에건축되고있는산수화오르겔
▲경기도양평국수리에건축되고있는산수화오르겔
프레스코발디, 북스테후데, 아드리안 윌너트, 지오반니 가브리엘, 쟌 피터스존 스웰린크 그리고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펠릭스 멘델스존, 바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기유 등 당대 오르겔 음악의 작곡가들은 주옥같은 곡들을 남겼다.

유럽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내려온 오르겔 문화로 어색하지 않고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아 나름의 문화를 향유한다. 그들에게는 많은 힘과 무한한 예술의 경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그것을 느끼기엔 오르겔 문화가 아직까지는 낯설다. 감동은 고사하고 작곡가의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우며, 곡은 난해하기만 하다. 한국에서 오르겔 음악회를 갈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오르겔곡의 레퍼토리 곡을 좀 색 다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오르겔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르겔을 전공으로 수학하고 있는 유학생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르가니스트 등의 음악가를 헤아리면 족히 1000~2000명은 된다. 이렇게 짧은 오르겔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비약적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연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르겔을 음악을 좀처럼 접하기 쉽지 않다. 혹여 음악회를 찾아가면 1시간 여 동안 가장 어려운 곡들만 선곡해 연주하기로 작정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오르겔 음악을 들을 때마다 괜한 후회(?)도 들고 오르겔의 진수를 맛보기도 전에 관객들은 지쳐버리곤 한다.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연주해야 할 곡들도 있겠지만, 얼마든지 한국의 실정에 맞는 유쾌하고 아름다운 곡들을 찾아내는 일이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윤이상 국제음악 페스티벌을 위해 윤이상앙상블이란 현악앙상블이 ‘진도아리랑’을 연주하였다. 정말 진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큰 감동을 받았는데, 곡이 끝나고 인사하러 나온 작곡가가 미국인이었다. 적지 아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충격이었다.

이번에 제작하고 있는 오르겔이 완성되면 3일간의 오르겔 페스티벌을 연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수제천’이다.

그런데 의외로 연주자 섭외라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부탁하는 사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하면 더 바하처럼, 모차르트처럼 연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한국의 음악가들에게 한 번도 중중모리, 자진모리, 굿거리 등의 한국적 가락을 접해본 적이 없었으니 한편 이해할 만도하다.

해외의 콩쿠르에 당선된 한국인에게 외국의 기자가 “왜 동양인은 문화가 다른 서양음악을 하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볼 때 당황해 한다고 한다.

지금껏 남의 것에만 열중하고 복제에만 신경을 썼을 뿐 한 번도 자기 것에 대한 성찰을 해보지 않은 것이다. 종묘제례를 보면 왕이 직접 나서서 선조들에게 최상의 정성으로 예를 갖춰 제사를 지냈다. 국가가 태평하고 백성이 복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전례 가운데에서도 바로 음악이었다.

왕들이 평소에 듣던 향악(우리음악)을 죽고 난 후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중국의 아악(중국의 음악)으로 종묘제례에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하여 세종대왕은 중국식 음악을 우리식으로 맞게 재편해 사용했다.

오르겔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악적 감성을 담은 곡으로 바꿔 연주한다면, 광범위한 음의 영역을 지닌 이 악기를 통해 우리 음악은 ‘신명’을 발할 것이다.

판소리의 수궁가나 심청전을 오르겔로 바꿔 다양한 음색으로 표현하면 영화보다 더 실감나지 않을까. 혹, 1950~60년대의 즐겨 불렀던 ‘빨간구두 아가씨’를 오르겔로 연주하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오르겔로 우리의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음악은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인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인간들의 영혼을 하늘과 교통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은하철도를 따라 경험하듯, 오르겔은 우리의 감동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르겔은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유기적 생명체다. 그 놀라움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감동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