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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은 바람이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생명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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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은 바람이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생명체가 된다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7)] 오르겔의 생명체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이번에도 역시 오르겔을 설치하면서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 이틀에 걸쳐 정상 작동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있는 중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일에 매달려 해결하느라 모든 팀들이 기진맥진이다.

이것이 온전한 작동이 안 되면 그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없다. 마치 촌각을 다투는 대 수술을 하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싶다.
▲논현동성당에설치된Opus5
▲논현동성당에설치된Opus5


지난 2년간 준비하면서 시행착오가 없도록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최대한 테크닉적으로 완벽하게 사전에 철저한 점검을 거쳐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미처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돌출될 때는 모두가 초긴장일 수밖에 없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온전하게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마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산모의 고통도 함께 있어야 함을 매번 절감한다.

▲오르겔내부의파이프군상들
▲오르겔내부의파이프군상들


오르겔은 그 제작의 결과는 가장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다. 바람을 이용해 파이프소리를 내는 것으로 간단하지만, 그 소리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작동시키기까지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메커니즘은 웬만한 컴퓨터보다 더 정교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에 있으면서 새 오르겔이나 오르겔을 보수하는 등 총 15대 정도의 오르겔을 제작하였다. 당시에도 오르겔 제작을 할 때마다 얻는 고통은 마찬가지였다. 매번 색다른 돌발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그때부터 해결하기까지 다음날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오르겔을 제작할 때 보통 현장작업이 크기에 따라서 2~5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오르겔이 완성 될 즈음에는 체력적‧정신적으로 에너지가 거의 고갈된다.

다만 그 당시에는 젊어서 그런지 웬만한 것은 참을 수 있었고, 또 외국이다 보니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빠져나갈 방도도 사실 없었던 것이 오히려 인내하게 한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귀국하여 지금까지 15여년에 걸쳐 오르겔 16대를 제작했다. 1년에 한 대꼴을 제작한 셈이다. 지금은 17번째 오르겔을 작업 중이다.

▲파이프와연주대를연결하는메커니즘연결막대
▲파이프와연주대를연결하는메커니즘연결막대


오르겔을 만들 때마다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항상 들면서도, 계속 정진하고 있다.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인 오르겔을 만든다는 묘한 자부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철, 나무, 가죽, 전선, 플라스틱, 주석, 나사 등으로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오르겔을 제작할 때마다 스스로도 경이롭다. 그 오르겔 통속의 내막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소리와 높은 소리로 화답하는 작은 파이프에서부터 큰 소리와 굵은 소리로 울리는 큰 파이프, 모자를 쓴 파이프, 나무 재료로 만들어진 나무 파이프, 깔대기 모양의 파이프 등 작게는 5㎜정도의 파이프에서부터 4~5m는 족히 되는 코끼리 같은 파이프까지 그 소리의 다양함은 우리의 생각을 벗어나기에 충분하다. 그 위에는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이 출정하기 위해 한점 흐트러짐 없이 서 있다.

이 생명의 소리를 위해 수천 개의 서로 다른 부품들이 얽히고설켜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바람창고는 허파처럼 움직이기 시작하고, 횡경막의 역할을 맡은 바람조절장치는 숨을 조절하기 시작하며, 각 혈관의 역할을 하는 바람터널은 보내져야할 사방팔방으로 바람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각 위치에 있는 바람상자는 그 바람을 열심히 담아놓고, 그 바람이 생명력을 갖도록 스프링과 지지대는 서로 버팀목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바람의 압력을 만들어내고, 비로소 에너지를 갖게 된 바람은 바람마개가 열리기를 바라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프리시펄코리아'
▲'프리시펄코리아'


이 오르겔은 연주자의 손가락을 통해 그 모든 작동장치는 서로 약속이나 한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바람이 그 위로 차고 올라가면서 파이프의 관속으로 빨려 들어가 파이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파이프 관의 공기를 진동하면서 힘차게 소리로 변화시킨다.

오르겔은 마치 인간의 태어날 때 호흡으로 생명이 시작되는 것 같과 같이 매우 흡사하다. 왜냐하면 오르겔도 호흡인 바람이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생명체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기쁨을 주는 지상 최고의 소리를 담고 있는 이 오르겔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태교(?)를 잘하는 수 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