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흠뻑 빠져본다고 이리저리 헤매던 20대, 독일에서 살던 30대, 한국에 와서 좌충우돌하던 40대, 그리고 어느 새 50대에 들어섰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후 오르겔제작가로서의 삶도 벌써 15년째다.
첫 번째 주기인 27년은 말 그대로 말 많고 탈(?) 많은, 뭐 특별할 것 없는 학창시절과 배움의 시기였다.
두 번째 주기인 27년은 파이프오르간제작가로서의 삶이다. 요즘 청년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불확실하게 여겨지는 비전이라면 가차없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런데 필자가 문화가 제대로 생성되지도 않은, 더군다나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오르겔제작을 주저없이 삶의 목표로 결정한 것이 무모하기 이를데 없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지금의 세대들처럼 똑똑(?)하게 고민하고 위험을 피해갔다면 파이프오르간제작은 당연히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남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결정하게 된 것은 나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고민을 오래하지도 못하는 편이지만 또한 단순하기가 이를데 없을 만큼 복잡하지도 않다.
애초 뚜렷한 목적의식을 같고 유학을 간 것은 아니지만, 그저 결심한 것을 시작하고 나머지는 칼자루 하나들고 잡풀들을 제거하면서 묵묵히 하나씩 하나씩 발걸음을 옮겨 길을 만들어갈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수많은 변수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연습 없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난 단지 그 무모함으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을 뿐이었지만, 그 결과로 지난 27년 동안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세 번째 주기인 앞으로의 27년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거가 "두려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에 대항할 수는 있다"고 얘기했다.
1998년 한국으로 귀국할 때는 마침 IMF로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난 그때 그게 뭔지도 몰랐다.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실업자신세로 몇 년을 보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을 맛보았던 것이다.
미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차피 두려움과 불안함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보이는 길이 안전하고 평탄하기만 할까. 알 수 없는 미래를 다시 한번 그려봤다. 그 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