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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즙 '발효 염색'은 전통 아닌 일본 영향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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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즙 '발효 염색'은 전통 아닌 일본 영향 탓

[염장 김정화의 전통염색이야기(51)] 류황색Ⅲ

[글로벌이코노믹 김정화 전통염색 전문가] 2009년 일본의 교토, 오사카 지역의 감즙염색 공방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공예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것이라, 공방마다 각기 다른 비법으로 감즙 염료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필자가 작업한 감물 직물들과 도록을 미리 보여주는 자진납부를 하고, 조심스레 당신의 염색공정과 염료들을 보여 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들은 ‘왜 아니 될 것이 있겠소’ 하며 쾌히 작업장 문들을 열어 주었다. 의외로 쉽게 개방한다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공방마다 각기 다른 비법으로 염료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 유통되는 플라스틱 통에 든 감즙을 구입하여, 상온에다 두고 쓰고 있었다.
실망스럽게도 그들이 하는 작업공정과 결과는 어느 집이나 매양 같았다. 은은한 갈색, 흑갈색으로 물들인 것으로 부드럽고 은은한 것들이 전부였다. 태풍과 비가 많은 지역특성상 감즙의 물성인 빳빳함을 활용하지 않는 점이 너무나 이상했다. 왜 갈색인 색만 쓰고 섬유를 강화시키는 물성은 활용하지 않은지가 궁금했다. 사용하는 감즙 염료의 생산 공정을 보고 싶었다. 감즙의 발효를 이리 정확하게 차단한 것을 보니 과연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염료 통에 적힌 주소를 받아 들었다.

주소를 들고 감즙 염료 공장을 찾아갔다. 13대를 이어온 공장이라 또 다시 정중하게 자진 납부를 마친 다음,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자신의 부친도 한 때(일제강점기) 한국에서 감즙을 가지고 온 적이 있었고, 자신도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고 했다.

감즙 생산 공정이나 공장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지를 조심스레 청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아 물론입니다. 그 대신 제게 조언도 좀 해 주십시오.” 그의 호탕함과 겸손함에 내심 탄복을 하며 공장을 둘러보았다. 감즙에 알칼리 약품을 첨가하여 가열하는 기본공정, 완성된 제품들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가열하고 알칼리를 첨가하는 공정은 감물만이 가진 최상의 기본 물성을 버리는 일이라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워 “왜요? 왜 유일한 특성을 없애는 건가요?”라고 물어대자, 그는 의외의 말을 했다.

사실 자신들이 생산한 감즙이 지금처럼 염료로 쓰여 지는 것은 자신들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자기네 회사에서는 염색을 위한 염료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전통술인 증류주의 침염물을 걸러내기 위한 용도로 감즙을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술에 함유된 단백질을 걸러내는 방법을 찾던 중, 그의 선조들이 떫은 감이 입안의 단백질과 결합되어 엉기는 성질에 착안하여 술에 감즙을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증류주가 만들어지는 시기와 땡감이 나오는 시기가 달라, 착즙한 감물을 즉시 사용할 수 없다보니 초산발효가 진행되는 일이 난감했고, 그 진행을 멈추게 하려고 알칼리를 첨가하여 가열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나오면서 감사의 말을 하니 그는 아직 그 수요가 적어 감즙 염료 생산은 미뤄온 일이지만 필자의 방문이 새로운 과제를 들여다 볼 기회가 되었다며 웃었다. 내 것을 줄 수 있는 손은, 받을 수 있는 손도 된다.
일부에서 감즙을 발효시켜 염색하고, 유통하는 것이 신기술이나 된 듯 포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일본의 영향을 입은 것이다. 우리 전통염색법은 쪽물과 홍화염외에는 발효염색이라는 게 없었다. 발효 염색이란 말은 전통이 아니다. 개발하고 있는, 아직 완전히 검증이 되지 않은 염색법이다.

/글로벌이코노믹 김정화 전통염색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