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그의 '소비의 사회'라는 책은 1970년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책으로, 앞서 언급한 책보다 11년 앞서 발표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설명하는 '소비' 역시 '시뮬라크르'의 연속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그는 오늘날 현대 사회의 '소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며 '소비'에 있어서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반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소비' 행위에 있어 선택의 주체인가.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 당하는 객체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이러한 '소비' 행위를 다른 이에게 강요한다는 점이다. 명품백을 전혀 소비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도 어느덧 그러한 소비 현상 혹은 문화에 의해 이러한 소비를 강요받게 된다. '나'의 주체적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소비에 영향을 받아 특정 소비를 강요받게 된다. '너'는 이것을 소비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이로 인해 소비의 주체성은 대상에게로 넘어간다. 이것 정도는 사야 되지 않나, 이것 정도는 소비해야 사회적 위신이 서겠지 등 그것을 소비하지 않으면 소외될 것 같은 불안감이 소비 행위의 실질적 동기이자 본질이다.
이런 현실로부터 귀결되는 결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선택하거나 물건이 물건을 선택하는 것. 그러다 보니 사람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진다. 사람이 물건을 선택할 때 사람이 주인이 되고 물건이 객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들은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그 물건에 의해 다른 이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즉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누군가에게 평가되는 대상, 객체가 되는 것이다. 사물화된 세계 속에서 사물처럼 되어버리는 인간, 인간은 이렇게 물질의 세계에서 점점 소외되는 셈이다. '소비의 사회'는 우리 인간이 사물처럼 세계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 그 틀 안에 완전히 갇히게 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사물화된 존재로서의 인간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정립해 간다. 이러한 상황의 역전과 아이러니를 통해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 불행이 무엇인지를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구 광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