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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441)] ‘스승의 날’을 보낸 어느 ‘선생’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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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441)] ‘스승의 날’을 보낸 어느 ‘선생’의 고백

가끔 등산을 가게 되면, 서로를 의지하고 선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을 보게 된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살랑거리며 반짝거리는 모양이 마치 까르르 웃음 짓는 학생들 같이 싱그럽다. 그 중 자태가 너무 고와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 꽃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동행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니, 미처 말하지도 않은 궁금함을 벌써 알아채시고는 “예쁘지? 오동나무야.”라고 스쳐가듯 말씀하신다. 이토록 아름다운 나무 이름 하나 모른다는 게 기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다던가. 세상에는 아직도 배워나가야 할 것들 투성이라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내 주변의 것들을 찬찬히 살피며 끊임없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살아있다는 증거이리라.
배운다는 것.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학교 선생에게는 자못 어색한 단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부족함이 많은 탓일까. 가르쳐야하기에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는 꽤 반갑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월 달력의 정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스승의 날. 사랑과 존경의 즐거운 감정이 호위하고 있는 5월을 보내며 ‘가르침’과 ‘배움’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본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처럼 생기발랄한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어 학교는 생동한다. 졸업한 아이들이 잊지 않고 교정에 찾아와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할 때, 학생들의 삶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겨 어느새 크게 성장한 내면을 마주할 때, 맑고 순수한 눈망울로 배움에 대한 열의를 보일 때 등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셀 수 없이 많다.

왜 나는 교사의 길을 택하였는가. 교직경력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잠시 멈춰 서 나의 교직생활을 돌아본다. 그토록 꿈꾸고 소망하던 교직의 길인데, 나는 처음의 그 순수한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학창시절, 학교와 가정은 내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는, 늘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선생님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였기에, 나 역시 -받은 사랑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꿈이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그 때의 그 간절했던 마음을 진부한 일상에 빼앗겨 말 그대로 ‘선생’의 길만 쫓아가는 것이 더 편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배움’이라는 주제로 다시 풀어쓴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을, 교사로서 가졌던 초심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

‘어떤 사람의 희망은 명예에 있고 어떤 사람의 희망은 황금에 있다. 하지만 나의 큰 희망은 사람에 있다.’(윌리암 부스)

교단에 서는 날을 그토록 갈망하던 시절,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이라는 책을 읽다가 마음의 울림을 얻어 메모해 둔 구절이다. ‘교사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는 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생의 마지막인양 관심을 기울이라고”한 모리 교수의 말처럼 한 명 한 명 소중히 대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지금 실천되고 있는지 돌아보니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선생님의 사랑을 알아주기를, 나를 기억해주기를, 그리고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철부지 선생은 아니었던가. 스승의 날, 어쩌면 내겐 너무 과분할 카네이션을 바라보며 아직 참된 스승이 되기엔 먼 과정이 남아있는 선생으로서 ‘배움의 도’를 되뇌어 본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서

그대가 누구를 가르칠 때,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장애물들 앞에서 부드러울 수 있는가?
영문 모를 어둠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밝게 볼 수 있는가?
남을 잡아끌지 않으면서 친절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가?
길을 뻔히 보면서도 남이 스스로 찾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가?

낳아서 기르는 방식으로 가르치기를 배워라.
손에 넣어 잡지 않고 가르치기를 배워라.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기를 배워라.

다스리려 하지 않고서 가르치기,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다.

<‘배움의 도’, p.20에서 인용>

비단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이야기만은 아닐 터이다.
이번 주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택함을 이끌어줄 고전의 그윽함을 향유해보길 권한다.
한소진 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