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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창업주 열전] 맥도날드 레이 크록, 음식점 쓰레기 뒤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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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창업주 열전] 맥도날드 레이 크록, 음식점 쓰레기 뒤진 사연

맥도날드는 믹서기 외판사원이었던 레이 크록이 53세의 나이에 창업한 회사다.
맥도날드는 믹서기 외판사원이었던 레이 크록이 53세의 나이에 창업한 회사다.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레이크 록은 보통 사람들이 정년퇴직이나 명퇴할 나이인 만 53살에 창업했다.

그러면서 패스트 푸드의 왕국을 열었다.
맥도날드 신화를 만들어 낸것.

세일즈 맨으로 일하던 중 ‘맥도날드BBQ’라는 작은 음식점에 들렀다.

8대의 믹서를 한꺼번에 구입한다기에 어떤 가게인지 궁금해 방문한 것이다.

손님이 들끓었다.

맥도날드가 만든 패스트푸드가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아예 인수해 버렸다.
레이 크록은 1902년생이다.

미국의 중부 도시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먼 조상까지 추적하면 체코 보헤미아 지역의 농사꾼의 피로 이어진다.

학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고교 중퇴를 했다.

15세 때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리다고 입대를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속여 군에 들어갔다.

거기서 월트 디즈니를 만난다.

둘은 같은 내무반을 쓰면서 친해졌다.

그 인연으로 나중에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랜드에서 맥도날드를 팔 수 있게 된다.

디즈니랜드 진출은 맥도날드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바다와 노인’ 등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내무반 동료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의 도움으로 10대 직원에게는 급료를 최저 임금보다 더 낮게 지급해도 된다는 이른바 ‘맥도날드 법안’이 통과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매일같이 새벽 2시에 다른 음식점의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버린 찌꺼기 속에서 경쟁업소의 노하우를 빼낸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만큼 열정적이다.

지금도 맥도날드에는 ‘성공하려면 새벽 2시에 쓰레기통을 파헤쳐라’라는 말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숨을 거둘 때까지 매일 1호점에 나와 아침청소를 했다.

햄버거대학을 만들어 점주와 직원을 상대로 교육을 했다.

졸업생에게는 ‘햄버거 전공, 프렌치프라이 부전공’으로 학위를 수여했다.

햄버거에 관한 한 최고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늘날도 햄버거대학은 햄버거의 총본산으로 맥도날드의 정신과 기술을 계승하는 주요한 장이 되고 있다.

1983년 타임지가 선정하는 ‘20세기 베스트 100인’으로 뽑혔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표준적인 음식을 고안하여 신속하게 서비스함으로써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이다,

이듬해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에스콰이어 지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고, 조지 워싱턴이 미국을 만들었다면 레이 크록은 미국에 혼을 불러 넣어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대호 연구소 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