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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55화)] 생각을 키워주는 행복한 국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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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55화)] 생각을 키워주는 행복한 국어여행

‘생각을 키워주는 행복한 국어여행(이하 국어여행)’

그 여행의 기차에는 1학년 홍성운, 김현수, 2학년 소현성, 허건, 김원빈, 추황길, 오재영이 탑승했다. 방학 2주차에 실시하는 ‘국어여행’이어서 걱정이 되었다. 가족여행이나, 교회 수련회, 학원 수강 등 다양한 사유가 ‘국어여행’과 동반되어 ‘방해(?)’ 아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28일(화),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국어여행’의 첫날부터 아이들은 문자로 학교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대견한 녀석들이다. 방학이면 특별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디, 집에서 나오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이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니던가.

수업은 9시부터 12시 20분까지 진행되었다. 아이들에게는 45분 수업에 잠시의 휴식, 그렇게 4시간의 수업이 진행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국어여행’을 통한 아이들의 흥미유발과 2학기 성적향상이라는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폼 나게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 원빈이 버스를 타고 조금 늦게 도착한 황길이와 건이, 어머님이 태워다주신 현성이, 성운이의 호출에 한걸음에 달려온 현수, 모범생 재영이와 성운이.

이렇게 우리 일곱 식구는 ‘국어여행’ 기차를 타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 첫 시간은 시를 써 보는 것이었다. ‘시’는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학기 중 국어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아이들이 어려워 하는 장르가 바로 ‘시’이다. 시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미지, 주제나 소재,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 시대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말한다. ‘시’를 읽지 않으니, ‘시’를 쓴다는 것은 더욱 힘이 든다. 학기 중 백일장 대회 참가 학생 선발 과정에서도 ‘시’는 아웃사이더다. 거의 대다수 학생이 ‘수필’을 선호한다.

어찌되었든, 아이들에게 ‘시’를 하나 제시하고 ‘모방시’를 작성하게 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를 넘어섰다. 손을 들어 시를 하나 더 작성하면 안 되겠냐(?)는 질문이 10분도 지나지 않아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재미있다며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우, 대단한디, 평상시 볼 수 없었던 여러분들의 감성이 잘 표현되었네요. 부끄럽겠지만, 다른 친구들의 시를 서로 읽어 보면서 감상을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장난은 아니죠 잉.”

“네. 쌤”

“쌤, 현성이는 정말 시인 같아요. 울 현성이가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줄 처음 알았어여. 이런 재능도 있네요. 친구에게. 부러워요.”

“현성이는 좋겠네, 황길이가 칭찬을 해 줘서, 쌤이 볼 때는 황길이 시도 참 좋은디, 창의적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당께, 앞으로도 시간이 되면 느낌 그대로 시로 옮겨보거라 잉.”

공간


소현성(2-2)

빈 공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이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가 들어가
그 공간에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공간은 쓰레기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고
그 공간에다가 예쁜 꽃을 심었습니다.
공간은 예쁜 화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담기는 것에 따라
공간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어떤 것을 담아야 할 지

시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아이들에게 시에 그림을 통한 전달효과를 표현해보도록 지도하였다. 아이들은 이 작업도 재미있게 따라주었다. 친구들이 그리는 그림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친구들아, 오늘 이 수업 작품은 쌤이 코팅해서 개학하면 2층 국어실 게시판에 전시해 줄게. 자신의 시가 부끄러운 친구들 있니? 부끄러울 게 뭐 있어. 이미 너희들은 시인인디. 자랑스러워 하거라. 그리고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국어의 기본이란 것 잘 알제.”

교실 밖은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근디, ‘국어여행’ 기차 교실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열정으로 숨이 막힌다. 어휘력이나 표현력, 그리고 상식이나 지식이, 독서의 양이나 신문 읽기가 부족하다고 해서 울 아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누가 이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무시하려 하는가.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평가가 없는 수업, 아이들의 꿈과 끼를 살려줄 수 있는 수업, 그 수업이 진정 살아 있는 수업일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교육현장의 고민이 더욱 필요할 때다.

폭염주의보 기사를 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국어여행’은 2015년 뜨거운 여름의 열정을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파일을 만들었다. 컵라면과 아이스크림도 함께여서 너무나 즐거웠다.

사랑한다. 야그들아.
방학 잘 지내고 멋진 추억들 많이 만들어 오거라. 2학기의 재잘거림을 위해......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