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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58화)] 우유 급식, 그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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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58화)] 우유 급식, 그 즐거움

1970년대의 중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름방학을 맞아 세 살 위의 형과 충북 영동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역에 내렸다. 역에 내리자 형과 나를 마중 나온 둘째 누님이 매점으로 가 병에 들은 흰 우유를 사 주셨다.
나는 충북 옥천 청산의 시골 촌놈이라 우유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유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그러나 벌컥벌컥 들이키는 형과는 달리, 나는 우유를 마시지 않고, 누님 집까지 가지고 갔다.

누님은 이런 내가 측은했는지 우유에 설탕을 조금 타서 달착지근하게 만들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우유라는 ‘친하지 않은 놈’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우유가 어쩐지 입맛에 찰싹 붙지 않고,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유가 없어서 마시지 못할 정도다. 아내가 무슨 물을 마시듯 우유를 마시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지만, 나름 아랑곳 하지 않고 즐겁게 우유란 놈을 만난다.

올 여름 더위는 무시무시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함을 넘어 아프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더운 나날들이었다. 더운 날이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 팥빙수, 시원한 수박, 청량음료 등이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어 더위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방학 전에 학교에서 배달하여 마시던 우유가 서너 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혹시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궁금증으로 시원한 우유를 하나 꺼내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때, 느꼈던 시원함은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갈증의 끝판’이었다.

오늘도 종회를 마치고 책상 정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하나 둘 우유를 마시지 않고 귀가해 버렸다. 과거에는 없어서 마시지 못했던, 그 하얀 빛깔의 우유, 지금은 넘쳐나지만, 하얀 우유 보다는 초코 우유나, 딸기 우유, 바나나 우유 등을 더 선호하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다보면 세월의 흐름을 눈앞에서 느낄 수 있다.
넘쳐나는 우유의 향연 속에서 각종 우유 유제품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백색 우유를 마신다는 것은 갈증을 해소하는 생수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유와 관련하여 가장 고민인 것은 우유를 마시지 않는 아이들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우유를 마시고 우유팩을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이 골머리다. 교사가 지도하기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을 바닥에 버리거나 교정의 나무나 벽돌 틈에 끼워 넣어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위의 사진처럼, 우유팩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바라보면, 청소년 시기에 범생이처럼 단정하게 정리하는 삶만이 건강한 성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반문이 생긴다.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