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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청년문제, 땜질처방 보다 미래위한 철학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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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청년문제, 땜질처방 보다 미래위한 철학 필요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23)] 청년들이 꿈꿀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라

정부·정치권·기업, 다양한 노력에도 이벤트로 끝날까 우려

'헬조선'이라지만 대한민국 미래 이끌어갈 주체는 그래도 청년
인천지역의 서쪽 끝 바닷가에 있는 월미도에 갈 때마다 항상 읽어보는 문구가 있다. 커다란 바위 돌에 깊게 새겨져 있는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다. 벌써 오래전인 20대 초반 시절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그 의미를 생각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때였지만 청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때 이후로도 21세기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원동력은 곧 청년들이라는 상징적인 메시지가 여전히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그것은 늘 애국심을 강조해왔던 학교교육의 효과이기도 했고 실제로 청년들의 꿈이 실현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만한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조국의 미래가 청년의 책임’이라는 말을 들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마도 단박에 외면당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런 배부른 소리는 하지 말라는 면박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인데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라는 말이 오히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암담한 상황에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서 인간관계, 주택 구입, 희망, 꿈까지 포기해버린 7포 세대에 다다른 현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2030청년세대의 자괴감을 반영하는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한국을 의미하는 ‘조선(朝鮮)’의 합성어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빗대어 말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최근의 몇몇 설문조사의 단골 소재는 바로 청년들이 느끼는 ‘탈(脫) 대한민국’ 현상이다. 한마디로 이 땅을 떠나서 살고 싶다는 뜻이다. 비관적인 생각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도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37.9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중 20·30대 청년층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로 나타났으며 그 비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한계점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긴 터널의 끝에서 과연 희망의 빛이 보일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년세대가 희망의 꿈을 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청년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더군다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청년들의 꿈이 사라진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꿈은 곧 희망을 의미한다. 청년들이 꿈을 꾸지 못한다는 것은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헬조선’이란 자조적 표현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직면할 가까운 미래의 실제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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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문지현 기자
우리보다 앞서 청년세대의 좌절을 경험했던 이웃나라 일본의 교훈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구마시로 도루가 집필한 ‘로스트 제너레이션 심리학’을 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상황과 미래의 모습이 대략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결국은 우리 사회가 쳐놓은 그물에 지금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원하는 미래를 살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부모,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내느라 막상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좁디좁은 취업 관문을 뚫기에도 벅찬 인생을 살아야 한다.

청운의 꿈을 갖고 올라타려고 했던 사다리는 누군가에 의해 치워져 버린다. 그 아래서 치열하게 살아남기에 바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좌절의 깊이만 깊어간다. 지금의 선배 세대 때문에 자신들이 희생 당한다는 피해 의식으로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은 소통의 문을 닫고 스스로 고립의 길로 접어든다. 젊은 청춘의 상징인 열정과 패기의 에너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좌절에 순응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성향으로 변해간다. 사회적 단절과 개인의 무기력감…. 어찌 보면 일본 사회가 경험한 청년세대의 심리적 갈등이 지금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삶의 여정에 있어서 청년시절은 꿈을 꿀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시대 청년들의 꿈은 팍팍한 삶속의 피로감에 묻혀가고 있다. 꿈을 꾸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의 기능과 역할이다. 우리가 원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는 청년들이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로 이뤄가는 선순환의 시스템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최근 정부와 기업, 그리고 정치권도 청년들의 삶에 숨통을 터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확충을 위한 관계부처 회의가 열리고 산하기관의 일자리 지원센터도 바쁘게 돌아간다. 기업도 올해 하반기 채용시장 규모를 확대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다음 달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일자리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제1호 기부자로 참여한 ‘청년희망펀드’도 개시되었다.

사회 각층에서 청년세대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과연 지금의 한국 사회가 앞으로 도래할 사회변화에 대응할 장기적인 철학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임시방편으로서의 땜질처방이 아니라 고용과 복지, 그리고 교육 부문에서 실질적인 토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정치권은 청년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 이벤트를 열고, 정부부처는 배정된 예산을 소진하기에 바쁘고, 기업은 눈치껏 동참하는 제스처만 취하게 된다면 역시나 그 본질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통령의 청년희망펀드 가입 이후 은행권을 비롯한 몇몇 기업들이 펀드가입 실적경쟁에 돌입했다고 하는 민망한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승우 숭실대 겸임교수
이승우 숭실대 겸임교수
오늘날의 청년들이 만만치 않은 시절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기술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앞으로의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주체는 지금의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년세대는 태생적으로 미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막중한 책임만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청년세대에게 강제로 책임을 떠맡기기 전에 그들이 자율적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자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자유를 이제 우리 사회가 허락해야 한다.
이승우 숭실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