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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64화)] 미당(未堂) 서정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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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64화)] 미당(未堂) 서정주를 만나다

서정주 시인의 호는 미당(未堂)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했다.

가을이 익어가는 9월의 막바지, 고창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모처럼 두 아이들도 흔쾌히 여행에 동참을 해 주었다. 장소는 아내와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고창지역으로 정했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산 자락으로 접어들어 상사화를 감상하고 2㎞ 남짓 대화를 나누며 정말 오랜만에 가족만의 산책을 즐겼다. 자연을 벗하며 걷다보니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인 딸은 책읽기를 좋아하여 미당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늘어놓자 귀를 쫑긋했다. 하지만 고3인 아들은 ‘국화 옆에서’, ‘동천’, ‘자화상’, ‘푸르른 날’ 등 미당의 작품을 정리해서 이야기 해 주어도 고개를 꺄우뚱 할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고창을 찾아 가족의 힐링을 생각했던 나의 계획에 ‘미당을 만나는’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고3 아들이 미당에 대해 의문 부호를 보이자, 계획에도 없던 미당 시문학관을 찾게 된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미당 시문학관의 휴관일인 월요일에 한가위 명절로 시문학관을 관람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시문학관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生家) 옆집에 기거하며 시문학관을 관리하시는 동생 분이 휴관일 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아름답게 정리하고, 운동장 주변에는 노란 국화꽃들이 활짝 필 그 날을 기다리며 수 만송이의 봉오리를 키워가고 있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무슨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눈으로 시구를 읽어 내려가고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 일이 전부였다.

학교 현장에서 실제 시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아이들이 소설에 비해 시를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시에 나타난 정서와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한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시험 문제만으로 생각하며 학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대중이 공감하는 좋은 시는, 작가의 개인적 진실로부터 나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가 살고 있는 사회 현실의 움직임과 발전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서정주의 ‘자화상’은 개인적인 솔직성을 뛰어 넘어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에 이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화상’이 다루고 있는 것도 역사를 초월한 개인이 아니라, 바로 역사 속에 있는 개인일 것이다.

박여범 용북중학교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박여범 용북중학교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미당의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고,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우리 아이들이 그 시를 학습하고 있다. 시인의 개인적인 솔직성을 뛰어 넘어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에 기초한 시 감상과 해석을 아이들과 고민해 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짧은 여행이었다.
박여범 용북중학교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