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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인재양성과는 거리 먼 교육풍토부터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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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인재양성과는 거리 먼 교육풍토부터 바꿔라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 24 ] 미래사회의 변화, ‘꿈꾸는 얼간이’들이 만든다

모범생으로 살아가지 않는 ‘얼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고정된 패턴이 아닌 무한한 상상력이 미래 변화 이끌어
2011년 여름 네티즌 평점에서 최고점을 기록하며 개봉한 영화가 있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3 Idiots)’다.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성적으로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세 명의 천재들이 벌이는 유쾌한 반란의 이야기다. 치열한 경쟁에 사로잡힌 학교 친구들, 그리고, 정해진 성공 법칙에 따라 1등만을 강요하는 교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자유를 향한 꿈을 펼쳐나간다. 전형적인 인도 영화의 속성을 담은 노래와 춤, 그리고 멜로와 유머 코드까지 겸비하며 영화 팬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뻔히 짐작할 만한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유쾌함의 저변에 깔린 현실풍자의 카타르시스가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마치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곱씹어보는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미래의 인재를 길러내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自畵像)이었다. 주인공 ‘란초’가 전하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서커스 사자도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훈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는 안합니다.” 교육과 훈련,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하는 것은 ‘교육’일까, ‘훈련’일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규격화된 상자 안에 가둬놓고 정해진 시간에 먹이를 주며 미리 설정한 미래의 성공법칙을 향해 몰아가는 현재의 교육현실은 어찌 보면 훈련에 가깝다. 성공적인 서커스 공연을 위해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사자를 훈련시키는 것과 흡사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실수 없이 잘해내는 모범생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미래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진정한 창의인재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학교의 평판은 취업률이 기준이 되고, 청년세대 부모들의 희망은 자녀들의 안정적인 직장 얻기가 되었다. 배우는 학생들 역시 미래직업의 첫 순위를 안정성에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공무원시험 합격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청년들의 하소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러한 시대 현실에서 남과 다른 모습으로 살면 ‘얼간이’ 취급을 당하게 될까 불안하다. ‘얼간이: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덜된 사람’. 국어사전에 쓰여 있는 의미대로 인생의 실패자로 남겨지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그렇게 덜 떨어진 듯 보이는 ‘얼간이’들에 의해 변해가고 있다. 정해진 길을 따라 모범생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 ‘얼간이’들이 미래사회의 혁신을 선도하고 인류의 먹거리를 만들어낸다. ‘Project Loon’. 하늘 위의 무선 통신망을 꿈꾸는 ‘구글’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오늘날 약 72억명을 넘어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아직도 인터넷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 약 48억명이 살아가는 지역은 여전히 인터넷 환경의 불모지인 셈이다. 구글이 구상하는 Project Loon은 열기구 형태의 풍선에 인터넷 통신장비를 실어 하늘로 올려보낸 후 지상 20㎞ 성층권에 도달한 풍선이 무선 기지국 역할을 하도록 추진하는 계획이다.

‘Project Loon’은 하늘 위의 무선 통신망을 꿈꾸는 ‘구글’의 야심찬 프로젝트다.이미지 확대보기
‘Project Loon’은 하늘 위의 무선 통신망을 꿈꾸는 ‘구글’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풍선은 바람과 태양열을 전원으로 하여 인터넷 망이 깔리지 않은 지역의 상공에서 무선 Wi-Fi 역할을 담당하는데 약 100일간 머무르며 풍선 1개당 직경 40㎞의 권역을 커버한다고 한다. 말로만 듣기에는 참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지난 2013년 6월부터 뉴질랜드에서 테스트가 실시되었고 현재도 미국 캘리포니아와 남미의 브라질 등에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구글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Loon’이라는 명칭을 생각하면 풍선을 의미하는 ‘Balloon’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Loon’이라는 단어의 구어적 표현이 재미있다. ‘얼간이, 바보, 미치광이’라는 뜻이다. 뭔가 모자라고 덜 떨어진 사람, 심지어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엄청난 돈과 시간, 그리고 인력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에 왜 ‘얼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하는 호기심이 들지만 이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말 그대로 이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는 다른 엉뚱한 상상력을 담은 프로젝트라는 뜻일 것이다.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역설적으로 담아낸 듯도 하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남들이 해왔던 방식을 뛰어넘어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얼간이’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커스 공연장의 의자에 오르기 위해 훈련 받는 사자가 아니라 야생에서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진짜 사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구글과 함께 인터넷 산업의 절대 강자로 부상한 페이스북의 미래 프로젝트 또한 야심차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주목 받고 있는 드론의 기술을 활용한 무인기와 위성을 하늘에 띄우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역시 인터넷 접속에서 소외된 지역의 하늘에 무선기지국을 구축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인수하는 등 미래의 하늘에 자신들의 그물망을 설치하기 위해 수많은 돈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구글과 함께 바야흐로 전 세계를 품에 안고 미래시대의 변화를 선점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하늘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상상력의 크기가 변화의 크기를 결정한다. 조금만 밖을 내다봐도 세상은 훨씬 더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를 선도하는 힘은 고정된 패턴을 벗어나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의성이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맞아, 사각형의 좁은 학교책상에 앉아서 문제의 정답을 맞히기에 바쁜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바라보게 된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좁은 틀 안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과연 이들이 앞으로 얼마만한 크기의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아니, 이끌어가는 것은 차치하고 그 변화의 큰 물결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도 염려스럽다. 가끔은 좀 ‘얼간이’가 되어도 좋을 텐데 정해진 길만 골라내는 모범생들로만 성장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서늘한 바람이 잦아드는 10월을 맞아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소식이 신문과 방송에서 전해진다. 그동안 한국과는 인연이 없어서 큰 기대를 갖기도 어려웠지만 아마도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씁쓸한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노벨 생리의학상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일본인 2명이 선정됐다. 역대 일본인 수상자 24명 가운데 21명이 과학분야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중국의 학자까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동북아시아에서 서로 경쟁과 협력의 미묘한 관계를 이어온 3개국 중에서 한국이 소외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승우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이승우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기초과학 부문의 혁신적 연구 성과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중장기적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더해서 실패를 허용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소위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얼간이’들이 미래사회의 변화를 꿈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절실하다. 실제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 사회의 정형화된 엘리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간직한 사람이 많다.

학창 시절에 축구와 스키 선수로도 활약했다고 하는 오무라 사토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보통사람보다 얼간이 짓을 많이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남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평생 자신의 분야에 몰입해왔던 80세의 ‘얼간이’ 노(老) 교수로부터 배우는 교훈이다.
이승우 숭실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