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다소 두껍고 작은 글씨체로 인해 부담스러울 줄 알았는데, 막상 읽고 나니 힐링 캠프를 다녀온 느낌이었습니다. 일에 몰두하다가도 그저 잠시 쉬고 싶을 때 이런 책은 나를 조금(?) 슬프게까지 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몰라보았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되는 책. 편하게 잡을 수 있는 크기(145mm*188mm)의 책에 자주 등장되는 흑백 삽화와 칼라 사진들(1/3~1/6 크기)도 구석구석 훑어보게 되는 재미와 묘한 집중력을 안겨줍니다. 내 장점이자 때로는 단점이기도 한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참 자잘 자잘한 기억도 잘 하는 작가가 잠시 부러웠고, 또한 책 속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폭넓은 감싸 안음과 글로 펼칠 수 있는 멋진 능력이 많이 부러웠으며,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기꺼이 전달해주어 읽는 이들의 힐링을 도와주니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나는 그날의 파인애플을 떠올렸습니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열대과일즙이 많고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게 불편한 그 과일의 맛이 결혼생활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여성으로서의 관능도 파인애플 껍질 같은 공고한 제도적 보호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중성 그리고 내재된 통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하는 것이 통증과 다르지 않음을. 나는 넌지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김선 기자와 나혜석 여사의 인터뷰 글 中/ 128쪽)
서울에 산다고 서울을 이렇게까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오는 대로 날마다 어디론가 가게끔 유혹하는 그 무엇에 홀릴 때 이 책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니, 이 또한 책을 통한 즐거운 인연이 아닐까요? 아침독서편지를 쓰는 시간이 점점 즐겁고 행복해질 따름입니다.
이원정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도봉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