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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생각의 자유' 회복할 수 있는 길 열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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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생각의 자유' 회복할 수 있는 길 열어줘야

[이승우와 함께하는 변화혁신(27)] 진짜 ‘자유’를 찾는 자유학기제에 대한 기대

교육정책 전반 자유에 대한 가치 인식의 대전환 중요

제도화된 상자 속에 갇힌 교육으로는 미래 보장 못해
내년부터 전국의 3204개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전면 실시된다.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 등 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013년부터 시범학교 운영을 거쳐 왔으며 2016년부터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시험 압박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고 폭넓은 학습경험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1974년 아일랜드에서 도입한 ‘전환학년제’와 유사한 성격이다. 수업 방식도 기존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론과 현장실습 등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형태로 개선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사회를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자신의 진로 탐색을 위한 자기성찰의 시간도 많이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제는 이렇게 좋은 뜻을 표방하는 자유학기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또 하나의 ‘교육제도’로만 그칠 수 있는 교육현실에 대한 우려다. 교육을 하나의 보편적인 ‘틀’로서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견해 차이와 갈등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일선학교의 학교장과 교사들이 갖는 자유학기제에 대한 생각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선 기존의 교과진도에 따른 수업에 익숙해있던 관성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대학입학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온 그간의 교육현실을 볼 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중간과정 정도로 여겨지던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하는 자조(自嘲)의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성적 향상을 위해 교과수업을 잘하는 것으로도 본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교에서 개별학생들의 적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각종 평가지표가 추가적으로 만들어지고 점수를 잘 얻기 위한 학교 간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곧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보다 챙겨야 할 일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하소연이 있을 법도 하다. 경쟁중심의 학교교육 문화를 개선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비전과 함께 시작한 자유학기제의 전면적인 확산을 앞에 두고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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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차원에서 자유학기제가 실질적으로 학교 현장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다시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경험을 확대하고 생각의 힘을 길러낸다는 명분으로 형식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것만이 능사가 될 수는 없다. 자유학기제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자유’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학기제’는 말 그대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제도라는 의미에서 별 이견이 없지만 앞에 붙여진 ‘자유’라는 단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자유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뒤따르게 된다. 여기서 ‘자유의 주체’라 함은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자유학기제의 가치와 방향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정부(교육부) 또는 학교의 자유인가? 아니면 인격적 주체인 학생의 자유인가? 라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자유학기제의 ‘자유’가 학생들의 입장에서 해석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유’에 대한 개념을 정부와 학교 등 교육제도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권한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선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장의 자유로운 권한 정도로만 여기기도 한다. 중학교 3년의 기간 중에 어느 학기를 선택해서 시행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자유학기제의 핵심 가치가 학교 관리자의 ‘자유’에 있다고 해석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자유학기제에서 말하는 ‘자유’의 주체는 바로 학생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하면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을 갖는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학교교육의 제도적 ‘틀’ 속에서 늘 무엇이 주입되어져 왔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자기탐색과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자유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폭넓은 경험과 자기성찰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미래사회에 대한 준비를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학생이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교육의 주체로서 ‘생각의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학교교육은 교육행정의 편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주체인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학교의 역할은 아직 구체적인 접근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학기제가 지향해야 할 ‘자유’는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교육학자인 장 자크 루소의 교육철학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루소가 ‘에밀’을 통해 제시한 교육의 본질은 외부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지키고 정신적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이라 했다. 자유학기제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주위의 사물을 체험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성장을 이루고자 했던 그의 교육철학을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시연(試演)해보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유학기제가 또 하나의 ‘제도를 위한 제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진짜 ‘자유’에 대한 가치인식의 전환이 더더욱 중요해진다. 본질과 형식의 가치 순위가 뒤바뀐 그간의 교육정책이 결국은 소모적인 시행착오로 이어졌음을 이미 오랜 기간의 경험으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제도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담게 된다. 우리의 지난 시절을 돌아볼 때 국가산업의 부흥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하는 교육제도가 나름대로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규격화된 ‘틀’ 안에서 잘 훈련된 인적자원이 많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다양성과 창의성 기반의 글로벌 시대를 맞아 제도화된 상자 속에 갇힌 교육으로는 더 이상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로 길러내는 일은 단지 교육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시대적 사명이기도 하다.

이승우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이승우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학교교육의 과정에 있는 우리 학생들은 지금껏 해왔던 생각보다 앞으로 펼쳐나갈 생각의 시간이 훨씬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정신의 자유가 뒷받침되어야만 새로움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상상력의 크기가 시대 변화의 크기를 결정한다. 조금만 밖을 내다봐도 세상은 훨씬 더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를 선도하는 힘은 고정된 패턴에서 벗어나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의성이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다.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될 자유학기제가 우리 학생들이 이러한 실천의 용기를 직접 발휘해보는 훌륭한 연습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 스스로의 더 깊은 성찰과 자기탐색을 가능케 하는 진짜 ‘자유’를 찾는 과정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승우 숭실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