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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풍경에 인위적 일탈 덧칠 다양한 이야기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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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풍경에 인위적 일탈 덧칠 다양한 이야기 담아내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60)] 풍경화, 자연으로 난 창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희로애락 표현

도시 속 삶 공간에 둔 풍경화 통해 다른 세계로 연결
이현열 작 '남해 물들다1', 70×10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4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남해 물들다1', 70×10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4
대부분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기하학적인 직선의 풍경에 익숙하다. 거리와 신호등, 빌딩과 집 등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대다수의 것들은 반듯한 직선을 하고 있다. 창문을 열었을 때 하늘이라도 한 조각 보이고 가까운 공원이나 멀리 있는 산이라도 보이면 운이 좋은 것으로, 대부분 우리가 창을 열어도 또 다른 직선, 또 다른 회색 등 쉼 없는 도시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현열 작 '남해4', 80×95cm, 한지에 수묵채색, 2014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남해4', 80×95cm, 한지에 수묵채색, 2014
이현열의 풍경화는 우리를 작가가 만들어낸 자연 풍경 속으로 데려다준다. 풍경을 주로 그려온 이현열은 여러 모습으로 변주되는 풍경화의 유쾌하고도 재미있는 일탈을 보여준다. 초기 작품에는 비닐봉지, 쇼핑백, 옷 등 다분히 일상적인 비풍경적 오브제 속에 풍경들이 담겨져 있어 풍경화와 정물화의 관계가 중첩되고 전복된다. 이후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실제 풍경에 가장 가깝게 그린 익숙한 풍경화와 함께, 풍경의 실사 스케치에 상상의 동물, 조형물, 인물 등을 삽입하기 시작한 낯선 풍경화를 창작하기 시작한다. 실제의 풍경과 작가가 인위적으로 삽입한 낯선 상황들은 때로는 그 장면에 실제 있었던 듯 때로는 어색한 듯 어우러지며 우리를 풍경 속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다.

이현열 작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90×232cm, 한지에 수묵채색, 2009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90×232cm, 한지에 수묵채색, 2009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은 작가의 눈으로 임진강이라는 풍경을 충실히 재현한 사실적인 작품이다.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임진강의 풍경은 구름 낀 흐린 날씨와 잔잔한 강물의 묘사로 고요하고 적막한 강변의 분위기를 전달해준다. 앞에 보이는 나무뿐 아니라 밭의 모습들, 뒤의 산까지 풍경의 면면이 세세하게 드러나 우리는 작가와 함께 화석정에 서서 임진강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흐린 날의 잔잔한 강물, 담백한 초록색의 밭과 산, 그리고 저 멀리 밭일하는 사람들을 작가가 포착한 임진강의 모습은 ‘임진강’이라는 장소가 주는 의미와 맞물려 그 평화로움이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임진강은 함경남도에서 발원하여 황해도와 강원도, 경기도를 지나는 강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6·25 사변 때의 격전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기억 속의 근대사의 격전지이자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의 장소인 임진강의 장소성으로 작품 속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훨씬 더 극적인 효과를 얻는다.

이현열 작 '명상의 공간2', 97×13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1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명상의 공간2', 97×13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1
실제의 풍경에 낯선 상황들을 인위적으로 삽입한 작품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유머러스한 화면으로 바꾸어버리는 유쾌함을 지니고 있다. 익숙한 풍경의 한쪽에 벗은 남녀가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고, 전혀 맥락과 상황이 맞지 않는 곳에서 뜬금없이 유명작가의 조각상이 나타나거나 혹은 ‘명상’, ‘혼돈’ 등 온갖 형이상학적 제목들을 붙이고 있을 듯한 조형물이 등장한다. 자연을 잘 그리고 싶기도 하지만 넘어설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즐기자는 일종의 일탈적 의미에서 일종의 만화적인 것들을 삽입했다는 작가의 설명처럼 신이 빚은 자연과 작가가 그린 일탈적 상황은 이현열의 화면 속에서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운 동거를 한다.

이현열 작 '삶을 즐기는 자 기쁨을 얻으리', 90×116cm, 한지에 목탄채색, 2009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삶을 즐기는 자 기쁨을 얻으리', 90×116cm, 한지에 목탄채색, 2009


이현열 작 '부실공사 금지구역', 116X9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0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부실공사 금지구역', 116X9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0
‘삶을 즐기는 자 기쁨을 얻으리’에서는 풍경과 함께 실로 잡다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하늘, 목탄으로 그린 나무 두 그루, 어두운 산 등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어두운 모노톤에 가까운 색조는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 아래 흐르는 강은 혼돈의 세상이다. 일견 쓰레기가 떠내려가는 듯 보이기도 하는 강가의 풍경은 기린과 개, 돼지, 새우, 개구리, 새 등의 동물과 마릴린 먼로와 인어, 벌거벗은 인물들이 맥락도 없고 원근법도 무시하며 어지럽게 등장하고 있다. 또한 만화적 메시지가 낙서처럼 휘갈겨 써있으며, 실사에 가깝다고 느꼈던 산 또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주전자와 고양이 등이 숨어있다. ‘낚시 금지 구역’이라는 팻말의 의미가 무색하게 등장캐릭터들은 낚시하고 술을 마시며, 경작을 하며 나름의 삶을 즐기고 있다. ‘낚시 금지 구역’, ‘수영 금지 구역’, ‘부실공사 금지 구역’, ‘수렵 금지 구역’ 등 일련의 ‘금지 구역’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금지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낚시 금지 구역에서는 낚시가, 수영 금지 구역에서는 수영이 이루어지며, 부실공사 금지 구역에서는 모호한 의미의 머리모양 조형물이 공사 중이며, 수렵 금지 구역에서는 수렵이 행해진다. 이 모든 ‘일탈적 행위’ 또한 풍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비닐봉지 모습 안에 그리건, 엉뚱한 상상력을 집어넣건, 금지를 넘어 즐기건 간에 이현열의 작업이 모두 ‘풍경화’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모두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삶의 이성과 감성, 부조화와 조화, 희로애락, 고됨과 휴식 모두 자연이라는 커다란 어머니의 품 속에서 이루어지며 우리는 또한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현열 작 '강진만', 65×75cm, 한지에 수묵채색, 2013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강진만', 65×75cm, 한지에 수묵채색, 2013


이현열 작 '봄이 오는 보성', 70×10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봄이 오는 보성', 70×10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
이현열의 최근작은 그 자연 풍경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현열의 풍경 속 초록은 싱그럽게 빛나고 바다는 푸르게 물들며, 밭이랑은 생생하게 다가오고 집들은 다정하게 산하의 품에 있다. 18세기 영국의 미학이론에서 진지한 숭고(崇高)적 아름다움이 아닌 회화성을 나타내는 데 쓰였던 ‘픽처레스크(picturesque)’라는 용어는 인공적으로 회화적 정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에 고딕식의 건축물 등을 그려 넣어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냄을 일컫는다. 이현열의 작품들은 실제 풍경에 비맥락화된 일상이나 작가의 상상을 삽입하거나 혹은 최근작처럼 실제 풍경의 아름다움을 배가하기 위해 물을 거의 쓰지 않은 물감으로 색에 생동감을 덧입힘으로써 실제의 장소를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항상 현재적인 모습의 생생한 ‘그림같은’ 풍경을 전해준다. 이 풍경은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해 창문을 열면 보이는 자연의 일부이자 어느 계절에도 푸른 상상의 세계이다.

이현열 작 '여름이 오는 주천', 80×12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여름이 오는 주천', 80×12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


이현열 작 '해가지는 여수', 110×8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해가지는 여수', 110×8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
풍경화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는 아름다운 순간의 풍경을 포착하여 그것에 영원성을 부여하여 화폭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 속 삶의 공간에 둔 풍경화는 그 자체가 자연으로 난 하나의 창이며, 다른 세계로의 관문이 된다. 순간을 그대로 기록하는 역할은 어찌보면 카메라가 더 잘하기도 하지만, 풍경화에는 그리는 사람의 정서가 기록되며, 그 풍경 속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강조되고, 때로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실제의 풍경을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정서를 전달해준다. 풍경화는 멈추어 있는 풍경의 순간을 포착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과거의 빛바랜 풍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 과거의 풍경과 그 풍경이 있는 현재의 공간,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과 그 그림을 보고 감상하며 해석하는 현재의 시간이 서로 맞물려 언제고 작가가 재창조한 풍경의 익숙하지만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매순간 데려다주는 것이다. 이현열의 풍경화는 그런 ‘그림 같은’ 정경을 선사하는 자연으로 난 창의 역할을 한다. 우리 마음 속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여는 창이며, 생생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창. 우리는 이현열의 창문으로 새로운 자연의 세계를 본다.

이현열 작 '여수농가 풍경', 50×7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현열 작 '여수농가 풍경', 50×7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5

● 작가 이현열은 누구?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한 이현열은 여덟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풍경화를 중심으로 하는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했다. 지역적 특색이 잘 드러나는 고장을 찾아 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을 고전 산수화보다는 풍경화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풍경화를 넘어 일상적 오브제, 비일탈적 상황, 작가적 상상과 결합되거나 색채를 극대화시킨 다양한 조형적 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풍경을 넘어 세계 속의 풍경들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고, 매일경제 TV <아름다운TV갤러리>에 미술평론가로 출연중이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