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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09)] 하지연 시인의 '한 남자와 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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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09)] 하지연 시인의 '한 남자와 세 여자'

'세상살이'가 '다 그렇고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넋두리가 아니다. 무엇인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 왔는데, 종착점에 다 왔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이다. 이 허무함 속에는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빠지면 재미(?)가 없다. 없으면, 싱거운 음식의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남자'와 '여자'이야기는 우리들 삶의 영원한 '화두', '활력소'라 감히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남자'와 '여자' 이야기의 갈증 해소를 위해 한 권의 시집을 만나는 것도 우리들의 새로운 '추억 쌓기'에 행복한 시간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남원을 사랑하고, 남원에서 삶의 자유를 만끽하며, 글쓰기와 사랑에 빠진 '남원 지킴이' 하지연 시인의 '한 남자와 세 여자'가 정답이다. 하 시인의 작품들(1부, 시 한 편, 2부, 울 엄마와 장모님, 3부, 아내와 나)을 통해 가까운 우리들의 가족, 친구, 이웃들이 살아가는 정겨운 이야기 여행을 떠나보자.

길 가는 사람들 모두
구린내에 코를 싸매지만
은행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은행 열매를 열심히 줍고 있는 두 여인

남남으로 만난 마음의 모서리가 서로
부딪치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흰머리에 주름살까지 함께 닮아가며
구린내를 풍기는 저 고부간
사랑도 깊으면 깊을수록
은행 열매처럼
냄새가 나는 것일까

비닐봉투에 사랑을 가득 담으며
소곤소곤 쑥덕쑥덕 덤으로 웃음도 한 바가지
그 질기고 질긴 힘줄 같은 것들이
가을볕에 곰삭고 있다.
[

하지연, '사랑이 구리다'


길가는 사람들은 '길 거리표 은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그 맛은 죽여주지만, 냄새가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바로 '똥', '인분'의 냄새에 가장 접근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은행'을 줍는 익숙하지 않은 두 여인이 '마음의 모서리'로 힘겨워하면서도 '흰머리와 주름살'이 닮아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구린내'를 풍기며, '은행'을 주워 비늘 가득 사랑을 채워가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다운가.

/사랑도 깊으면 깊을수록/은행 열매처럼/냄새가 나는 것일까/라는 시인의 표현은 지금껏 살아온 우리의 삶과 '사랑'을 돌아다보게 한다. 시를 읽어 가다가 이 부분에서 잠시 눈을 고정하게 된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 그래서 하 시인은 '사랑'을 '소곤소곤 쑥덕쑥덕 덤으로 웃음도 한 바가지'이며, '그 질기고 질긴 힘줄 같은 것'이기에 '사랑이 구림'을 어리석은 독자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말이다.

'세월'은 정말 빠르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것이 바로 '세월'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짧은 인생에서 아쉽고 그저 '젊음'이 부러울 때가 있지 않은가?

열세 살에 아비를 잃었고
아내와 함께 묻지 마 서울로 창신동 달동네에
몸을 풀었다
이발사 자격증 땄던 날 밤 막걸리 파티에서 울었다

첫 출근 이발소에서부터 쫓겨 다니길 수십 번
화장실에서 손 헐도록 연습
이십팔 년 육 개월 여
소공동 가위손이라 했다

카메라 앞에서 장인의 모습은 없고
쑥스러워하는
사십 년 전 그
세월을 낚는 늙은 아이
(
[하지연, '세월을 낚다']

열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감당해내기 어려운 '멍에'다. 그래도 여차여차 아내와 서울 달동네에 터를 잡고, 이발사 자격증을 땄던 날 밤의 막걸리 파티는 새로운 인생의 서막이라 생각해서 울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발소에서부터 쫓겨 다니길 수십', '화장실에서 손 헐도록 연습'이란 세월 속에서 '이십팔 년 육 개월 여'만에 드디어 '소공동 가위손'이 되었다.

그러나 청춘을 다 바쳐 낚은 '소공동 가위손'은 '카메라 앞에서 장인의 모습'은 없고, 쑥스러워하며 늙은 '사십 년 전 그, 아이'가 '세월을 낚으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닮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긴 세월 자신의 위대하거나 거창한 업적이 줄줄이 기록된다 하더라고 '세월'이란 녀석의 심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 시인은 '세월'이라는 '얄궂은 녀석', 그 녀석도 미워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쑥스러워하는 늙은 이'로 표현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갈 것이다. 그 시간들이 모여 세월이 되고, 그 세월에 따른 고만고만한 추억들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항상 긍정적으로 주어진 현실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세월의 낚음'이길 기대해본다.

전북 남원 출생 하지연 시인은 2007년 '시선'으로 등단, 남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첫 사랑은 방부제였다' 등을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도 '한 남자와 세 여자', '세 여자와 한 남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되어 다양한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멋진 여유로 행복해지는 것은 어떠한지?

'똥' 냄새 나는 친구나 연인이 있으며 더 좋고, 그렇지 못하다면 시인처럼 세월을 낚으며 웃어줄 수 있는 시 한 편을 읽어 보는 것도 한 해가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일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
박여범 전북 용북중학교 교사(문학평론가·수필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