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문득 중학교 때 읽었던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책이 떠올랐다. 도덕 선생님께서 방학 과제로 내 주며 읽어 오라 했던 짧은 소설이었는데,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소재로 한 그 소설의 내용은 당시에 매우 충격적이었고 그런 까닭에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수용소에서 이반이 차갑게 식은 죽을 먹는 장면이다. 그는 한 끼를 먹더라도 뜨끈뜨끈하게 데워진 죽을 먹을 수 있기를 그토록 절실히 바랐는데, 소설에서 그가 허기를 메우기 위해 차갑게 식은 음식을 먹으며 찬 것을 뱃속에 넣을 때의 상실감을 길게 토로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가 체험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기꺼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인가, 어쩌다 가끔 찬 음식을 먹거나 할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소설의 이반의 심정이 되어 그의 기분이 어땠을지 돌이켜 보곤 했다. 아, 음식이란 자고로 뜨끈뜨끈한 맛에 먹는 것이 아니던가. 중학생의 어린 나이에도 이반의 상실감에 가슴 아팠고, 나는 내가 뜨거운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음에 무의식적으로 감사함을 느끼곤 했다.
소설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장면이 이렇게 내 삶의 어느 순간마다 불쑥 머릿속에서 튀어 나와 그 당시의 기분과 생각을 떠오르게 하면서 현재의 나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도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나는 학교 식당의 그 조촐한 한상 차림에 기꺼이 땀을 흘리면서 속을 덥히는 가운데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맛본다.
이동구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진로독서센터 연구원(광성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