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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간 경계에 쌓인 '쓰레기'부터 치워야 조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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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간 경계에 쌓인 '쓰레기'부터 치워야 조직 변화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4)] 문제를 기회로 전환하라

조직 내 부서끼리 담쌓고
협력하지 않는
'사일로 효과'
'기능조직'일수록 악영향 커
단위조직 개선활동 강화해
한계효용성 떨어지고 있다면
부서 간 경계에서 해답 찾아야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초등학교 교사는 일제강점기에 목조로 지어졌던 건물이 흔하게 사용되었다. 자재가 나무인데다 건축술이 발전되기 전이니 한 층에 십여 개의 학급이 길게 늘어선 복도식이었다. 아마 중년의 나이라면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던 나무복도에 대한 추억이 누구나 있으리라. 복도청소를 유난히도 열심히 했었는데,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기름칠한 걸레를 사용하여 반질반질하도록 닦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 새롭게 분양되는 주택에 깔린 대리석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윤이 나게 닦았다. 그 교실에서 학생들은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생활했고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걷지 않도록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개구쟁이들은 선생님 감시의 눈이 사라지면 매끄러운 복도에서 미끄럼을 타는 장난도 잊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뛰어와서 중간 즈음에서 멈춰서면 멋지게 미끄러져 가는 놀이를 선생님 몰래 즐겼던 것이다.

어느 날 우리의 놀이터이자 노역(?)의 대상이었던 복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첫 수업 전에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나무 복도에 기름을 먹이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2학년 1반이었는데 그날 따라 2학년 2반 녀석들이 복도의 쓰레기를 우리 반쪽 복도로 은근슬쩍 자꾸 밀치는 것이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지 않았다면 그 쓰레기를 네 것이네 내 것이네 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확히 어느 순간에 종소리가 났는가 하면, 걸레로 쓰레기를 서로 밀치며 신경전을 벌이다가 두 학급의 복도 정중간에 일직선으로 쓰레기가 정렬될 즈음이었다. 우리는 조회를 위해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피해서 교실로 후다닥 들어가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빼곡히 일직선으로 정렬된 복도의 쓰레기를 보고 당연히 사태를 간파하셨으리라.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엄청나게 화를 내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두 학급 학생들을 모두 운동장으로 불러내어 주먹 쥔 상태로 엎드리게 하고는 훈계를 하셨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꽤나 오래된 일이지만 그 때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놈들, 두 학급의 경계선이 제일 깨끗하게 청소되어야 한다. 복도의 경계선 청소는 우리 1반, 2반이 서로 중첩으로 담당하는 청소구역이다. 1반이 경계선 너머 2반 쪽으로 조금 더 청소해 주고 2반도 1반 쪽으로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닦아 주면, 경계선이 그 어디보다 깨끗해야 한다.”
얼핏 소아적 이기심이나 장난으로 웃고 지나칠 수 있는 청소 사건이다. 선생님의 간명하고 호혜적인 교훈은 지당하여 교과서에 나옴 직하다. 그러나 실상은 성인들로 구성된 조직에서도 무척 지키기 힘든 일이다. 변화관리 또는 조직설계와 같은 컨설팅을 수행하다 보면, 초등학생 청소의 신경전보다 더 유치한 일도 많이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이 내 부서 일이 가장 많고 힘들다며, 다른 부서에서 일을 못해서 어쩔 수가 없단다. 분명히 넘쳐나는 쓰레기가 확증되어도 부정하거나 제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서로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고 그 가장자리에 애매하게 위치한 일들은 서로가 힘을 합쳐서 해결하자고 하면, 서로의 책임으로 미루며 저항해 다투거나 ‘내 몰라라’ 하고 미적거리는 경우가 의외로 허다하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편집장, 테트(Gillian Tett)는 이러한 현상을 곡물 창고에 비유하여 ‘사일로 효과(organizational silo effect)’라고 부른다. 사일로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외국영화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굴뚝처럼 생긴 원통 모양의 창고인데 원래는 사료나 곡식을 저장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조직 내 부서들이 사일로와 같이 서로 담을 쌓고, 다른 부서나 외부와는 소통도 협력도 기피하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부서 이기주의까지 겹치게 되면 모름지기 사일로 효과는 조직의 발전과 변화를 저해하는 장애가 된다. 조직이 비대해질수록 악영향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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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로 효과는 조직관리 측면에서 뿌리도 깊고 심리적 측면에서도 인지상정이다. 사일로 효과가 표출되는 대표적인 조직구조는 기능조직(functional organization)으로, 산업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생산, 마케팅, 물류, 재무 부서 등의 기능별로 분화된 구조이다. 이러한 수평적 분화는 전문화(specialization)를 통해 효율과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문화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생산성 증대의 방책으로 주창한 분업(division of labour)으로부터 테일러(Frederick W. Taylor)의 과학적 관리법, 포드주의(Fordism)로 이어져 산업계에 정착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고안된 조직구조가 기능조직이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능률향상, 원가절감에 초점을 두고 잔뼈가 굵어졌다. 기능조직은 현대 기업의 전반적인 전문성을 육성, 제고하는 데 기여하였고, 그 특장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경계를 제거한다고 아메바조직, 가상조직 등을 운운하는 호사객의 주장처럼 기능조직을 섣불리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심리학자인 타즈펠(Henri Tajfel)은 인간의 비합리적 편견을 연구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두 분류로 범주화하는 경향을 밝혔다. 우리는 부지불식중에 자신이 소속되었다고 느끼는 내집단(ingroup)과 그렇지 않은 외집단(outgroup)으로 세상을 나눈다. 나아가, 구분된 집단에 따라 정보 해석에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전형적인 예는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와 외집단 폄하(outgroup derogation)라고 불린다. 요컨대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나!’라는 우리 속담과 상통하는 현상이다. 내집단은 가치, 규범, 생활양식 등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실수, 오류 또는 실적을 예상하거나 평가할 때 더욱 관대해진다. 외집단은 그 반대이다.

이러한 관대화의 차이는, 성과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는 양식에도 내∙외집단에 따라 상이한 고정관념이 나타난다(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error of attribution)라고 부른다). 내집단의 성공은 역량, 성격, 노력 등의 내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지만, 외집단의 성공은 조건이나 상황과 같은 외적 요인에서 찾게 된다. 부정적인 실패에 대해서는 반대의 근원지를 찾게 된다. 내집단의 실패는 외적 요인에서, 외집단은 내적 요인에서 원인을 들추어낸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 결과에 대해 각 나라의 국민들이 해석하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자국의 승리는 능력, 노력의 결과이고, 패배는 운이 없었거나 편파적인 심판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내집단의 다양성은 과대하게 인식하는데 외집단의 다양성은 무시된다(외집단 동질성효과(outgroup homogeneity effect)라고 부른다). 내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개성, 가치관, 성격이 실제보다 다양하다고 인식하는 반면, 외집단은 유사한 성향의 개인들이 모였다고 느끼는 편향이다. 이 역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정당(내집단)에서 돌발적인 사고가 일어나 ‘개인적 일탈’이라고 가볍게 넘어가지만, 반대하는 정당(외집단)이라면 ‘다 똑 같은 놈들’이라고 엄중하게 해석하기 일쑤이다. 우리가 미국인, 호주인, 캐나다인을 구별 못하듯, 그들도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을 동일하다고 보는 현상도 같은 이치이다.

이상의 내∙외집단에 대한 차별적 선입견은 굳이 심리학적 설명이 없더라도 실생활에서 누구나 느끼고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강력하고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험에 의하면, 가위바위보와 같이 의미 없고 하찮은 기준으로 집단을 배정하더라도 사람들은 내∙외집단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편애 및 폄하, 귀인오류의 편향된 행동을 한다. 따라서 기업현장에서 자신이 소속된 부서를 내집단으로 인식하면서 발생하는 고정관념은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더욱 공고할 수 밖에 없으며, 다른 부서와의 상호작용 및 소통 방식에 다분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상으로 사일로 효과의 저변에 작동하는 기능조직과 심리적 선입견을 살펴보았다. 이전의 기업환경에서는 부서 간 소통이 다소 원활하지 않더라도 기능조직의 사일로 효과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효율적 분업과 전문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기능조직의 가치가 충분했기 때문에 묻히고 숨겨져 있었다. 내∙외집단 고정관념으로 부서 간 소통과 협력이 위해되는 폐단도 일정 용납되거나 선의의 경쟁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조직의 대다수 기능은 평준화, 일반화되어 차별적 역량으로서 힘을 잃고 있다. 스타트업(startup company)이 아닌 이상, 조직을 형성하는 인사제도, 구매경로, 생산방식, 마케팅전략 등이 경쟁사와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각 부서가 지니고 있는 문제까지도 다른 기업과 유사하다. 이 즈음되면 개별 부서의 역량을 보강, 완결하는 노력은 한계효용이 떨어진다. 다잡아야 할 부서 내 결함이나 오류가 없진 않겠지만, 개선 노력에 비해서 가성비가 낮은 사소한 것들(trivial many)이다. 실효성이 없는 일에 진부한 방법으로 매달리다 보면 역동성도 새로움도 없는 사이비 변화(▶3월 16일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 <1>사이비 변화(pseudo-change)에서 탈출하라 참조)로 경도되고 만다. 열심히 하지만 효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개별 부서의 개선 활동과 전문성 강화에 한계효용이 떨어지고 있다면, 부서 간 경계에서 답을 모색해야 한다. 유사한 문제가 몇 해가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만성화된다면, 특정 부서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기능적 시각으로는 발견하기 힘들지만, 작금에 선진기업의 성공과 경쟁우위는 부서 간 경계로부터 창출된다. 사일로 효과를 원만하게 타개할 수 있는 조직의 능력은 중요한 변화역량으로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의미이다. 그 동안 부서 내의 문제에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오명을 들을까,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애를 썼다. 반면에 부서 간 경계의 문제에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덮어 버리거나 애써 외면하기 일쑤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미명 하에 발설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악습도 흔하다. ‘벌레 든 깡통’을 여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꼴이니, 아무도 깡통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말로만 쉬운 ‘무경계 조직(boundaryless organization)’을 해결대안으로 강변하는 것은 반의어를 내보이는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 시스템에 체계적인 변이를 주입해야 한다. 긴요한 변이로 ‘수직적 구조의 수평화’, ‘수평적 구조의 수직화’를 동시에 시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상급자와 직원들이 수평적으로 평등하지 못하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계의 문제는 특히 그러하다. ‘네 일이나 잘 하시오’라는 핀잔으로 무시되는 문화에서는 입을 닫게 된다. 어차피 문제를 찾아서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은 현장에 있는 하급자에게 있다. 따라서 직급에 관계 없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조직의 수평적 관계는 고객과 시장 중심으로 불평등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판매부서는 마케팅부서에, 마케팅부서는 생산부서나 연구개발부서로 VOC(고객의 소리)를 밀쳐내는 행태를 근절하려면 수직적 구조로써 통제해야 한다. 고객과 직결된 부서에 상대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강고한 지원, 협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긴요한 변화는 인식의 전환이다. 우선 기업의 문화를 점검해 보자. 경계에 쌓인 쓰레기를 부정적인 문제로 취급하고 있는지,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긍정적인 기회로 평가하는지.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