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26)] 시인 동주가 사랑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공유
0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26)] 시인 동주가 사랑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아름다운 사람은 그 사람이 떠난 자리에 잔향(殘香)이 남는다고 한다. 비단 직접 대면(對面)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해당되는 일만은 아니다. 문학을 통해 작품을 만나고 그 문면에 흐르는 느낌이 좋아 이 글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찾아보게 될 때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은 시작된다.

내가 만난 시인 중 참으로 고담하고 맑은 느낌을 주었던 사람 가운데 바로 윤동주가 있다. 얼마 전 영화 '동주'가 개봉되어 아픔의 시절을 살아낸 윤동주와 송몽규에 대해 재조명된 바 있어서인지, 서점에는 초간본 때와 같은 모습의 유고시집이 적잖이 진열되어 있었다. 백석, 한용운, 김소월 등 내로라하는 시인들과의 만남도 기대되지만 하늘도 맑고 바람도 솔깃한 5월 별을 사랑한 시인 윤동주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시인 윤동주와 교유(交遊)하면 그처럼 맑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찬찬히 그의 시들을 음미해보련다.

그의 시집을 펼치면 정지용의 서문이 실려 있는데, 그가 만난 윤동주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언제나 나의 넋이 맑아짐을 경험한다"라고 한 문익환의 고백 또한 윤동주 시인의 순정한 성품과 정신을 알려준다. 그를 만나고 싶다.

그의 시세계는 주로 기독교 의식, 동심지향의식, 고독한 자아의 현실인식과 자아의 발견, 자아와 현실의 갈등과 자아성찰, 현실극복의 가능성과 이상적 자아상의 성립이라는 범주로 논의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여 일제치하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기독교적 의식으로 극복하고자 시도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 잡지를 구해서 읽었던 동시도 그와 같은 세계에서 살았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과 함께 그의 작품 세계에 반영되어 있다.

그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고독한 자아로서 자신의 존재와 시대적 운명을 생각했고 그것이 '슬픈 족속'과 '슬픈 그림' 등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시인 동주는 일제 치하 식민지 현실 속에서 시를 통해 자신을 표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슬픈 천명'을 감당하는 것은 폭압이 가득한 현실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자기 위안이기에 그의 시에는 심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의 정조가 많이 나타나는 듯하다. 그러나 괴로워하던 그가 이상적인 자기 정체성을 갖고 미래를 향해 긍정의 가능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쉽게 씌어진 시'나 '봄' '별 헤는 밤' '서시' 등의 시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어둠 속에 있을 때, 길고 긴 터널 속에 있을 때,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일제 치하에 사는 것처럼 시대적 아픔을 직면하고 있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일은 대개 비슷하지 않은가. 어둠과 방황, 갈등의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의 길을 모색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응전하는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거나 수필 형식의 글을 쓰게 한다.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이내 숙연해지며 자신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며, 이전보다 성장할 그들의 미래를, 아름다운 삶의 노래를 꿈꿔 본다.

"'시와 생활의 일치'라는 말을 나는 이미 했다. 그의 산책이나 대화, 그리고 침묵까지가 하나의 시였다. 나는 이런 체험을 동주에게서 많이 발견하였다."(장덕순, 「윤동주와 나」, 나라사랑23집, 1976)

시인 동주의 시에는 윤동주라는 사람의 빛깔이, 향기가, 순연히 들어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찌 보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이렇듯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길 찾기는 아닐까. 윤동주의 시는 그 순정하고 치열한 삶의 발자취와 함께 오롯이 남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하늘도, 바람도, 별도, 詩도 이렇듯 아름다운 날들엔, 시인 동주를 만나러 가자.
한소진 덕신고등학교 교사 sojini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