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꽤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공용어를 지지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게감 있게 다가왔었다. 지금 다시 읽으면 그때만큼 현장감은 없다. 초점에서 벗어난 면도 있지만 지난 세월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 말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 부분도 크다.
최근 화제인,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다룬 BBC의 기사가 흥미롭다. 작품을 영어로 옮긴 데버러 스미스는 한국어를 6년 동안 독학하고서 소설을 번역하는 수준에 올랐다. 이유는 뭔가. 한글이라는 배우기 쉽고 효율적인 문자 덕분이다. 그러니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게도 맨부커상을 일부 줄 만하다. 기사의 골자다.
누구나 쉽게 배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한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이유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인 만큼 우선 의사소통의 범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다음으로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고 탈권위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어 공용어론 논쟁의 격렬한 공방은 일단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그러나 한글과 우리말을 둘러싼 또 다른 논쟁이 계속되는 듯싶다. 이럴 때 '나는 고발한다'를 다시 읽으며 말과 글의 싸움 뒷면에 담긴 권력의 문제를 되씹어보면 어떨까.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경기 안양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