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30)] 색채의 마력…색채의 배후에는 장대한 우주가

공유
4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30)] 색채의 마력…색채의 배후에는 장대한 우주가

강마을은 ‘소만’ 무렵입니다. 소만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드는 절기로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리밭에 계절의 더께가 내려앉아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모심기를 하기 위해 물 잡아 놓은 논 옆에는 푸른 잔디 같은 모판이 보입니다. 초록으로 빽빽한 작은 모들은 며칠 후면 이앙기에 실려 논에 칫솔처럼 송송 심어질 것입니다.
사춘기 소년처럼 머쓱한 모습의 그네들은 늦은 봄과 이른 여름 사이 질퍽한 논에서 비와 햇살에 의지하여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의 모습 같습니다. 총총한 모습이며 초록빛 싱그러운 색감, 이제 더 넓은 대지를 향해 가야하는 서툰 발걸음이 어여쁩니다.

이렇게 초록은 성장하는 젊은이 같은 색채입니다. 저는 그 색채를 무척 좋아합니다. 햇살에 잎맥이 드러나는 벚꽃나무 이파리의 초록과 반짝이는 사철나무의 연초록과 칠엽수의 넓다란 초록 잎사귀 그늘을 사랑합니다. 온 세상이 기분 좋은 초록으로 가득한 오월입니다.

아침 독서시간,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서가로 가서 몇 권의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침에 본 초록빛 모판을 생각하며 책을 뽑았습니다. 하마모토 다카시의 ‘색채의 미학’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데 엽서 한 장이 나옵니다. 연필로 연꽃을 그린 엽서입니다. 아마 책을 읽으며 엽서를 쓰고 책 사이에 끼워두었나 봅니다. 그 엽서의 주인인 저도 잊고 있었던 엽서입니다. 받는 이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썼을까를 오래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9년 1월 18일, 그 때 저는 누구에게 이 연꽃엽서 한 장을 보내려 하였을까요?

생각은 꼬리를 물고 저는 초록의 물결이 온 산과 들을 뒤덮고 있는 강마을 풍경이 보이는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펼칩니다. 어느 눈 내리는 날, 왕비가 흑단으로 만들어진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렀습니다. 새하얀 눈 위에 빨간 피가 세 방울 떨어집니다.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빨간 입술, 흑단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딸이 있다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설공주’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흰색, 검정, 빨강 세 가지 기본 색은 동화에서 흔히 사용됩니다. 그 색채들은 ‘백설공주’에서 펼쳐지는 세계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흰색은 순진무구한 백설공주의 마음, 검정은 계모의 사악한 마음, 빨강은 새빨갛게 달군 신발을 신고 처형될 계모의 운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색채의 배후에는 장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고, 색채론은 바로 이 대우주와 인간이라는 소우주의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채론은 결국 인간 탐구 그 자체이자 철학의 명제를 지닌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정치와 종교의 상징으로 색채는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금색을 가리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영광의 금색’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였으며, 비슷한 계통의 노랑을 ‘차별의 색’으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중세 신성로마제국에서 유대인에게 노란 모자를 쓰게 법령을 만들었으며, 독일의 나치 시대에는 그 절정으로 다윗의 별을 역이용하여 노란별을 가슴에 달도록 하여 유대인 차별과 박해에 사용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교 뒤쪽의 보리밭에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더니, 저녁 무렵에는 짚 검부러기를 태우는 연기가 납니다. 저는 이 냄새를 무척 좋아합니다. 잘 익은 보리떡 냄새 같기도 하고, 금방 구워낸 빵 냄새 같은 그런 기분 좋은 냄새가 납니다. 봄 햇살에 잘 영근 보리밭의 풍요로운 색채가 냄새로 바뀐 것일까요. 아름다운 봄의 끝자락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많이 납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선애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연구원(경남 의령 지정중 교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