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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변화 몰아붙이기보다 저항력부터 낮춰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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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변화 몰아붙이기보다 저항력부터 낮춰줘라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5)] 물길 발굴해 변화의 저항력 약화시켜라

조직 움직이던 기존 작동원리
무지•무시 땐 갈등과 저항 유발

성공적으로 조직을 바꾸려면
섬세하고 면밀한 역량 갖춰야

역설적이지만, 한국 공무원들이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단상이 들곤 한다. 일제강점기, 전쟁, 독재를 경험한 탓일까? 유독 우리 국민은 정치에 관심이 많다. 사소해 보이는 정치적 이슈 하나하나에 국가의 사활이 걸린 듯하다. 올바른 통치에 대한 열망은 정치인도 다를 바 없으리라. 어떤 정권이든 공무원의 무사안일, 관료적 행태에 불만을 토로한다. 자기 뜻대로 잘 따르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혁신에 기민하고 정권의 입맛에 수시응변하는 집단이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나와 정견이 다른 정권이 들어섰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세상으로 일체 뒤바꿔 버린다면 끔찍한 사태가 될 것이다. 더구나 무능한 정권에 발맞춰 공무원이 쉽게 따라서 변한다면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다.

워낙 관료제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덧씌워져, 막스 베버(Marx Weber)가 체계화했던 19세기에는 관료제가 최첨단의 통치체제였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베버의 시대에 유럽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던 과도기였다. 도시의 산업화 속도와 규모는 소수의 귀족과 왕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대소사가 결정되던 왕정체제의 한계를 부각시켰다. 또한 산업도시에서 급증하는 노동자 수만큼 착취의 문제도 심각했다. 불안정한 고용,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렸다. 15세 전후의 아이들까지 공장과 탄광에서 12시간 이상 작업했다는 당시 기록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사회 전체의 부는 증대되었지만 인간사회 전반적인 삶의 질은 불우해지던 불합리의 시대였다.

베버의 문제의식은 ‘권력이 집중된 인간이 자행하는 불합리한 자의적 판단’에 집중되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권력행사에서 비합리적인 인간을 배제시켜 규칙과 법에 따르도록 고안된 조직이 관료제이다. 관료제의 특장점은 집중된 권력을 쪼개어 전문화하며 규칙과 법을 기계적으로 지킴으로써 직권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다. 이로써 베버는 관료제를 효율성과 합리성을 극대화하는 조직구조라고 믿었다. 당연히 완전무결한 조직구조는 없다. 법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기계적 소극성으로 보수화되는 관료제의 단점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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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공무원이 답답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그 ‘변화’를 되짚어 보자. 겉으로는 유연하고 적극적인 법규적용에 대한 아쉬움들이다. 그러나 행위주체인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주어진 법규를 시류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라는 요구이다. 인간의 임의적 판단을 지양하여 평등을 추구하려던 관료제의 원래 취지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원하는 변화에만 몰두하다가 자칫 관료제의 긍정적인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변화를 주창하는 측이 반대급부로 부각될 직권남용과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공무원이 변화에 더디고 변화를 가로막는 저항과 갈등이 일편 이해가 된다.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옹호하자고 꺼낸 화두는 아니다. 모든 변화에 앞서 조직을 움직이던 기존의 작동원리가 있다. 이에 무지하거나 무시하면 변화에 대한 갈등과 저항이 유발되어 원하는 변화는 지체되거나 실패로 이어진다. 사회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레빈(Kurt Lewin)도 조직변화의 첫 단계로서 이를 강조한다. 그는 성공적인 조직변화는 해빙(unfreezing)-변화(moving)-동결(refreezing)의 3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네모나게 얼어붙은 얼음을 삼각형으로 바꾼다고 가정해 보자. 해빙단계는 원하는 형태로 변하기 쉽도록 녹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에 중점을 둔다. 만약 해빙단계가 부실하면 여전히 단단한 얼음을 삼각형으로 억지로 맞추면서 깨지거나 얼음 파편이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종국의 결과도 예상했던 미려한 삼각형이 아니라 울퉁불퉁하여 흉한 모습이 되고 만다. 레빈은 각 단계가 짧거나 경미하게 진행될 수는 있으나 건너뛸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레빈은 역장이론(force field theory)으로 변화환경을 자기장에 비유하여 해빙단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조직변화를 이끄는 추진력(driving forces)과 변화를 거부하는 저항력(restraining forces)이라는 두 힘이 역동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두 힘이 균형상태이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조직변화는 추진력이 저항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때 발생한다. 그가 제안하는 효율적인 변화는 추진력의 강화가 아니라 저항력의 약화이다. 저항을 약화시키는 활동이 첫 번째 변화단계인 해빙단계이다.

레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국방부 산하의 연구소에서 특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병사들의 식습관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요청받았다. 미 국방부는 단백질 부족으로 야기되는 병사들의 건강문제가 무기나 탄약의 보급보다 전투력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슈를 안고 있었다. 동물의 창자, 간, 심장, 허파 등의 장기를 섭취하면 단백질 결핍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나 문제는 당시 서양인들이 잘 먹지 않았거나 혐오하던 부위들이었다. 해당 부위의 영양가를 홍보하고,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하여 전달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담은 선전도 이어졌지만 종전이 될 때까지도 소비진작에는 실패했다. 마치 한국인들에게 유럽의 고급요리라는 달팽이의 영양가나 맛을 홍보한다고 선뜻 먹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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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후에도 레빈의 주장은 다양한 실험으로 증명된다. 그중에 예일대학교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이 흥미롭다. 학생들은 파상풍 및 예방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교육 종료 후 학생 대부분은 강의내용을 납득했고 교내의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받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3%에 불과한 학생들만이 예방접종을 받았다. 이와 비교하여 다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추가로 보건소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예약가능 시간표를 배포하여 확인시켰다. 그 결과 28%의 학생들이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변화를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우리는 부지불식중에 정당성과 합법성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해지면 변화를 강요하고 명령하거나 부당해 보이는 ‘현재’를 서슴없이 금지하고 처벌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 하지?”라고 답답해한다. 그러나 레빈의 연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무리 올바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심지어 그에 수긍까지 하더라도 행동변화로 직결되지 않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손까지”라고 한다. 아는 지식과 실천하는 행동의 간극을 잘 표현한 경구이다. 소극적인 조직구성원이 반드시 변화의 합당함을 몰라서 엉거주춤 머뭇거리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추진력에 몰두하기보다 저항력을 줄이는 데 관심과 노력을 배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로 공감하고 손으로 실행하는 과정에 항상 저해요소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변화에 대한 갈등과 저항은 마치 물리학에서 마찰력과 같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변화와 공존하는 요소이다. 저항과 갈등의 수위를 낮추는 해빙단계를 변화준비단계부터 고려하여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현재까지 연구에 의하면 조직변화의 실패는 저항력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와 추진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야기된다. 이런 측면에서 나심(SaboohiNasim)과 스쉴(Sushil)이 추진력과 저항력의 역학관계를 정리한 4가지 모델은 조직변화의 속성을 간파하고 갈등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들은 저항력을 현 상태를 유지하여 조직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지속성의 힘(forces of continuity)’으로 명명하고 긍정적인 면도 강조한다. 여기에는 조직의 핵심 이데올로기, 핵심 역량, 문화, 현 상태의 고성과 등이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저항력은 변화의 가속도에 방해가 되므로 변화에 반하는 갈등과 저항으로 인식되지만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진취적인 문화나 핵심 이데올로기가 조직변화를 수행하는 데 오히려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첫 모델은 추진력과 저항력이 서로 독립적이며 조직의 성과에도 두 가지 힘이 독립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직성과는 추진력과 저항력의 효과를 각각 총합하는 개념이다. 이 모델은 소규모의 조직변화로서 그 영향도 국소적이므로, 타 부서나 기존 체계에 미치는 충격도 미미할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모델은 추진력이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저항력에 의하여 조절된다. 두 힘이 독립적인 관계이지만 저항력은 조건적 환경으로 작용한다. 즉, 저항력이 높다면 추진력에 의한 성과는 낮아지고, 저항력이 낮은 조건에서는 그 반대이다.

추진력과 저항력의 동시 추구를 강조한 세 번째 모델은 각각의 총합이 아니라 서로의 영향이 상쇄된 절대값이 조직성과이다. 최근 회자되는 양면역량(ambidextrous capability)의 개념으로, 서로 모순관계인 추진력과 저항력을 동시에 추구하여 균형을 관리함으로써 조직성과를 제고한다. 마지막 모델의 조직성과는 저항력을 배경으로 실현된다. 기존 저항력은 조직성과뿐만 아니라 새롭게 추진하는 변화 추진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저항력의 강약에 따라 추진력 자체가 반감할 수도 있다. 1990년대 초의 조직변화 연구자들이 가졌던 견해로, 저항과 갈등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야근을 근절하겠다고 저녁이면 사무실 조명을 소등하는 기업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물론 변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야근을 성실로 인정하는 문화, 합리적인 업무분장과 업무량 등의 야근 저항력은 무시한 채 불을 끈다고 될 일은 아니다. 조직변화를 구축함에 있어, 추진력도 긴요하지만 저항력을 파악하여 약화시킬 방책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저항력에 대한 방책은 조직변화만큼 거창하지 않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다. 앞서 ‘예방접종 실험’에서 단순히 보건소가 표시된 지도를 보여 줌으로써 저항력을 낮추었다. 더구나 학교 지리에 밝은 4학년생들이라 보건소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레빈은 이와 같이 사소하지만 행동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물길요인(channel factor)이라고 불렀다. 들판에 도랑물이 흐르면서 만드는 길은 작은 돌멩이, 미미한 바람, 낮은 경사에도 경로를 바꾸게 된다는 점에 착안한 명칭이라고 한다. 원대한 조직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강력하게 몰아붙이기 이전에 소소하지만 저항력을 낮춰줄 물길요인을 발굴•관리할 수 있는 섬세하고 주도 면밀한 역량이 요구된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