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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전략과 통제로는 조직변화 성공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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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전략과 통제로는 조직변화 성공하기 힘들다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6)] '영웅담'보다 창발적 변화 시도하라

통제는 대부분 현실에 안 맞아
실패 인정하는 열린 마음 있어야

제재보다 구성원들의 공감 중요
그래야 현재의 습관에서 탈피

변화관리팀, 조직문화팀, 조직혁신팀 등의 부서를 운영하지 않는 기업은 찾기 힘들어졌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이런 명칭의 부서는 익숙하지 않았다. 단순히 서구선진기업을 모방한 조직구조로 볼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이 높아진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목적으로 신설된 부서라고 판단된다. 한편 지속되어온 파급력에 비해 아직도 정체성이 모호한 부서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구체적인 돈이나 사람을 관리하는 업무도 아니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변화나 문화를 관리한다니 쉬울 리가 없다. 다른 부서에서는 승승장구하고 능력을 인정 받던 인재도 이런 부서로 배치된 후에는 능력 발휘는 고사하고 동료들 눈치만 보는 신세가 되곤 한다. 그만큼 업무의 속성이 상이하다는 의미이다.

대부분 제도교육은 교사가 문제를 출제하고 학생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구조이다. 문제풀기는 잘 하면서 좋은 문제를 설제해 보라고 하면 난감해진다. 부지불식중에 우리는 이 구조에 익숙해져 자신의 업무를 스스로 발굴하고 정체성이나 의미를 스스로 규명하는 데 허약하다. 또한 문제를 ‘틀림없이’ 풀어야 직성이 풀리고 철두철미하다고 칭찬도 받는다. 주어진 과업이나 계획을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애초에 설정된 성과를달성해야 능력자로 인정받는다. 주어진 업무가 계획(plan), 조직(organize), 지휘(command), 조정(coordinate), 통제(control)라는 전통적인 서양식 관리행위(Henri Fayol의 주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어야 흡족하다. 그러나 조직변화를 다루는 업무는 상의하향식(top-down)으로 주어지더라도 경계와 범위가 모호하다. 그래서 결과 및 성과를 미리 재단할 수 없고 좌충우돌하는 실행 과정에서 해법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전략분야의 구루인 민츠버그(Henry Mintzberg)가 제시한 ‘전략실현의 흐름’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강조한다. 종국에 실현되는 전략(realized strategy)은 숙고된 전략(deliberate strategy)과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으로 구성된다. 애초에 의도되었던 전략(intended strategy)은 숙고된 전략으로 실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합하지 않는 현실에 맞닥뜨려 실현되지 못한다. 비데이(Amar V. Bhide)의 연구에 의하면 성공기업의 93%가 초두에 수립한 전략을 모두 포기한다니 그 불확실성은 과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폐기되는 초기 전략의 일부는 창발적 전략으로 대체된다. 즉 애초의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야기된 문제나 포착된 기회를 통해 새롭게 수용된 전략이다.

민츠버그는 의도된 전략과 숙고된 전략을 강조하는 반면 창발적 전략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경영학사에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논쟁이 있다. 바로 혼다효과(Honda Effect)이다. 일본 기업인 혼다는 1960년대 슈퍼커브(Supercub)라는 배기량 50㏄의 소형 모터사이클로 미국 시장에 침투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미 대륙에 진출한 지 5년여 만에 시장점유율 50%를 초월한 약진이었다. 기존에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과 트라이엄프(Triumph Motorcycles)가 500㏄ 이상 중대형 제품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다는 슈퍼커브로 마련된 교두보를 활용하여 중대형 시장까지 평정하게 된다. 슈퍼커브의 cub의 뜻이 ‘맹수의 새끼’였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작지만 저돌적인 슈퍼커브의 이미지를 잘 아로새긴 제품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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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성공은 앞다투어 컨설팅 회사나 경영대학원의 분석 대상이 되었다. 다각도의 수치 자료와 논리에 근거하여 ‘치밀한 전략’이 드러났다. 혼다의 성공 요인은 시장을 세분화하여 기존 경쟁자들의 관심 밖이었던 소형 모터사이클이라는 틈새를 공략하고 이미 일본에서 획득한 규모의 경제와 저원가를 토대로 효과적인 가격전략을 구사했으며 소형 모터사이클로 확보한 세분시장을 확장하여 중대형 시장까지 점령했다는 게 골자이다. 이 일련의 성공 시나리오는 경영학 수업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런데 미국 시장 공략에 직접 참여했던 혼다의 경영진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한 연구결과는 달랐다. 그들은 ‘치밀한 전략’은 고사하고 시장에 대한 기초 지식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 사업 개시는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의 성수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져 어처구니없이 1년을 허비했다. 초기의 주력 제품은 소형이 아니라 250㏄와 350㏄ 제품으로 기존 경쟁자를 무모하게 직접 공략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더구나 잦은 클러치 고장과 기름이 새는 품질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인들이 소형 모터사이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창발적 전략으로 수용함으로써 성공에 이른다. 소형 모터사이클은 원래 혼다 직원들에게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이들이 가방이나 간단한 짐을 휴대하고 편리하게 출퇴근하는 모습이 미국인들에게 신선하게 보였다고 한다. 결국 실패와 좌절 속에서 소형 제품이라도 한 번 시도해 보자는 시행착오가 성공에 이른 것이다.

혼다 효과를 두고 학자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의도된 전략과 창발적 전략의 힘겨루기는 성패를 가리지 못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고 경계가 모호한 조직변화의 특성상 실행 과정을 중시하면서 창발적 전략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팔머와 던포드(I. Palmer &R. Dunford)는 이러한 관점을 조직 변화의 6가지 이미지로 정립했다. 6가지 이미지는 변화관리를 ‘변화’라는 결과물과 ‘관리’라는 행위로 구분하고 이를 조합하여 구성한 것이다.

결과물로서의 변화는 미래의 상태 또는 바람직한 결과를 의미하는 변화 관리의 목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제도나 기술 도입과 같이 사전에 의도된 구체적인 목표에 익숙하다. 하지만 신대륙 발견을 위한 항해나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방식의 조직변화라면 구체적인 목표 수립은 불가능하거나 의미가 없다. 항해와 양육의 목적은 뚜렷하더라도 항해의 궁극적 도착 지점이나 아이가 갖게 될 직업이나 전공을 의도적으로 예단하기는 힘들다.

한편 보편적인 관리행위는 통제가능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조직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조직변화는 이해관계자 또는 조직구성원과 소통에 의해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지시형 변화는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세우는 건축에 비유할 수 있다. 변화의 의도된 결과물(건물)이 명확할 뿐만 아니라 짓는 과정도 통제가 가능해서 조직구성원은 주어진 임무를 지시에 따라 수행하면 된다. 코칭형 변화는 바람직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데 상의하달의 변화임무를 강제하지 않는다. 통제보다는 조직구성원이 조직변화에 스스로 공감하고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변화가 불편하더라도 스스로 현재의 안정화된 습관, 관습으로부터 탈피하도록 지식과 기술을 지원한다.

변화의 결과를 의도할 수 없다는 여건에는 보육형 변화와 양육형 변화가 있다. 변화 노력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이에 반응하는 과정에 조직이 학습하고 성장하는 경로에 의해 결과가 결정된다. 결국 조직의 역량이나 특성에 의해 결과가 결정된다. 흔히 콩나물 키우기에 비유되는 아동교육이 적합한 예이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고스란히 그냥 흘러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나물은 나름대로 자란다. 애써 준 물을 머금지 못하는 콩나물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이 변화관리의 역할이다. 보육형은 합법적,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고아원에 가깝고 양육형은 직접적인 통제보다 스스로의 잠재력, 면역력, 자생력을 제고하는 변화풍토의 조성을 통해 간접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조직 변화가 지지부진하고 곤란한 처지라면 상기된 연구 내용을 반추해 오류를 점검해 보자. 혼다 효과처럼 우리는 영웅을 만들기 좋아한다. 성공적 결과에 사로잡혀 달성하는 과정까지도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치장해 버린다. 논리정연하고 이해가 쉬울 수는 있지만 멋진 성공에 대한 후광효과일 뿐이다. 그럴 듯한 벤치마킹 이야기를 그대로 복제하는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면 애초에 신기루를 좇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담에는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 처절한 좌절과 갈등, 우연한 구사일생 등이 인생역정으로 반드시 포함된다. 합리적인 분석으로는 실패하는 인생이어야 한다. 그 이면에 숨겨진시행착오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과 학습 역량으로 실현된 창발적 변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실무자들이 일반 업무와 동일선상에서 무턱대고 지시형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지시형 변화가 유효하려면 조직변화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관계자를 장악할 막강한 권력을 보유해야 한다. 세밀한 설계도와 저항 없이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자원이 없다면 실패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대다수 기업의 조직변화는 계획과 통제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계획된 통제는 항상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조직변화에 대한 의도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진단하고 적합한 변화전략을 선정해야 한다.

창발적 변화의 가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한 학습에서 비롯된다. 이와 반대되는 실무적 개념은 관습화된 철저한 분석이다. 기업환경이 안정되었던 과거에는 면밀한 분석이 미덕이었다. 하나 지금은 완벽한 분석에 몰두하면 실기하게 된다. 몇 달 동안 수 차례 보완된 보고서를 검토하고도 경영진이 뱉는 반응은 ‘OO 방면의 자료를 좀더 찾아 보고 보완합시다’ ‘좀더 두고 봅시다’라고 미루기 일쑤이다. GE의 워크아웃(Workout)에서 눈여겨볼 원칙이 있다. 도출된 아이디어의 75%는 채택/폐기를 즉시 결정하고 나머지 25%도 30일 이내에 결정하도록 만든 경영진의 임무이다. 그들은 이를 ‘의사결정의 속도’라고 부른다. 완벽한 정보와 계획으로 숙고된 전략을 구사하기보다 적절한 수준의 정보와 계획으로 신속하게 시도하고 시행착오와 적응력으로 창발적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