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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말글산책] “할머니, 밥 먹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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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말글산책] “할머니, 밥 먹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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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이재경 기자]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울 때 존댓말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존댓말이 어렵기는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한국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필자가 기차 여행을 하던 중 천안역에 정차했을 때 일입니다. 열차에 오른 한 젊은이가 할아버지 옆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할아버지, 여기 자리가 없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젊은이가 어르신에게 공손하게 한 말, “여기 자리가 없으세요?”는 과연 존댓말일까요?
눈치 빠른 독자 분은 벌써 알아채셨겠지요. 이 젊은이는 할아버지에게 존대를 한다는 것이 물건에다 존대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여기 자리가 없어요?” 하면 될 것을 “자리가 없으세요?”라고 함으로써 ‘자리’님(?)에게 존대를 한 꼴이 돼버렸습니다. “여기 자리가 없어요?”라거나 “여기 자리가 없습니까?”라고 해야 바른 존댓말이 됩니다.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사람이 아닌 사물에까지 존댓말을 쓰는 현상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백화점에 가면 종업원이 손님에게 공손하게 “찾으시는 물건이 계십니까?”, “마음에 드시는 게 계시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물건이 다 떨어지셔서 추가 수량이 다음 주 들어옵니다.” “이 물건은 색깔별로 준비돼 있으십니다.”라며 물건에다 대고 계속 존대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 이는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며 백화점 등 각 판매업체들이 직원들에게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나타나는 웃지 못할 현상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표현 중에 ‘(찾으시는 물건이) 계십니까/계시면’ ‘(물건이) 떨어지셔서/있으십니다’의 주체는 손님이 아니라 모두 제품입니다. 종업원이 손님을 극진히 높여주려 한 말이겠지만 손님보다 오히려 제품을 더 높여주고만 꼴이 된 것입니다. 위 예문들은 “찾으시는 물건이 있습니까?”,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물건이 다 떨어져서 추가 수량이 다음 주 들어옵니다.”, “이 물건은 색깔별로 준비돼 있습니다.”로 해야 바른 표현입니다.

또 “회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아드님께서 아주 똑똑하시네요.”라는 표현은 듣는 사람에겐 자신을 높여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말입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아드님이 아주 똑똑하네요.”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충분히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존대를 해야 할 상황에 높임말을 정확히 알지 못해 실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말할 때 “할아버지께 물어보세요.”, “할머니, 밥 먹으세요.”라고 합니다. ‘물어보다’는 ‘여쭈어보다’, ‘밥’은 ‘진지’라는 높임말이 있습니다. 이때는 “할아버지께 여쭤보세요.”, “할머니, 진지 드세요.”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재경 기자 bubmu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