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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개혁 대상인가…재계, ‘9월 2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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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개혁 대상인가…재계, ‘9월 2일’이 두렵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봇물'…지배구조 손 볼 땐 타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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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자료사진
[글로벌이코노믹 이동화 기자]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개원하는 9월 2일을 앞두고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순환출자 해소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겠다고 나섰고 국민의당도 대기업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새누리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 등 비교적 중립적인 경제 활성화 관련법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여야의 경제입법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더민주는 지난 24일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해소와 대대적인 세제 개편, 다중대표소송제,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등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34개 입법과제를 발표했다. 이 중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이 상당수여서 재계와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더민주가 선정한 경제민주화 6개 분야는 △대기업 집단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공평과세 실현 △소비자·투자자 보호 △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 보호 △소득 양극화 개선 △사업장 내 민주주의 확립 등이다. 34개 세부입법과제에는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지하경제 양성화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독립적 사외이사·감사 선출 방안 마련 등이 포함돼 있다.

재계는 기존 순환출자 금지 법안 등 지배구조 개편에 주목하고 있다. 신규순환 출자 금지에 이어 기존 순환출자 해소까지 추진될 경우 대기업은 계열사 지분 조정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편의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지는 삼성전자는 2015년 자사주 11조3000억원 규모를 매입 후 소각하고 16.3%의 높은 배당 성향을 나타내는 등 주주친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승계를 고려해 주주친화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원샷법의 도움을 받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현대차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나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이 과정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23.29%를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새 지주사 지분 매입을 위해 출자해 지주사의 확고한 지배력을 갖게 하려는 복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력 사업인 조선업의 침체 국면까지 장기화되면서 그룹 전반의 사업 재편을 모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현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에서 정기선 전무로의 지분 승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문제가 더 크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 이슈까지 맞물리면 현 체제와는 다른 지배구조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부회장과 벌인 형제의 난에서 승리하며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력을 확보한 롯데그룹 역시 대표적인 순환출자 그룹으로 꼽히지만 그룹 지배구조상 큰 변동을 초래할 수준은 아니며 후계자들의 나이가 많지 않아 지분 승계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한화그룹과 CJ그룹도 후계자들의 그룹사 지분 늘리기 등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정기국회에서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더민주의 경제민주화 법안이 상정될지 여부에 대해 재계는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은 우리 경제에 또 다른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기업의 경영권 위축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재벌, 개혁 대상 아니다

우리는 대기업이 지은 아파트에서 살고 대기업이 만든 차로 출근한다. 출근하면 대기업이 만든 컴퓨터로 일을 하고 대기업 계열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휴일이 되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영화관이나 대형마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휴가 때는 대기업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대기업 집단, 즉 재벌들은 우리 경제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더 이들에 대한 편견과 비호감을 갖게 마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위해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며 9월 정기국회에서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개선,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해소, 독립적 사외이사 감사 선출 등을 우선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대기업집단, 재벌체제는 개혁해야 할 대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해외 대기업의 승계 사례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 대기업 승계의 원활화를 위한 규제완화 등 제도 설계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포드, BMW, 헨켈, 하이네켄 등 100년 이상 장수 글로벌 대기업의 성장 비결이 ‘다양한 제도로 인한 합법적인 경영권 승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섣부른 규제는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오히려 편법 승계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 재벌, 한국 경제 마이너스 아니다

미국의 정상급 정치학자로 꼽히는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발전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재벌’이라는 대기업 조직을 꼽았다.

스테판 교수는 “재벌이라는 대기업 조직이 독특하다”며 “대기업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다양한 상호보완적인 기업 활동에 집중 투자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팽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역사상 가장 큰 폭의 기업 성장을 이끌어낸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1987년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재계 서열 1위 그룹이다.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의 경우 세계 전자·정보기술(IT) 기업 중 매출액 1위, 순이익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브랜드 가치 역시 세계 7위로 집계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1980년대 말에 백색가전을 통해 미국 시장에 뛰어들어 지금도 헐값에 파는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삼성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3위에 자리매김했다.

기술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자동차를 개발·판매하기 시작해 글로벌 5위의 자동차 업체로 우뚝 선 현대기아차는 지난 6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가 발표한 ‘2016 신차품질조사(IQS, Initial Quality Study)’에서 33개 전체 브랜드 가운데 기아차가 1위(83점), 현대차가 3위(92점)에 오르고 총 11개 차종이 차급별 평가에서 수상하는 등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신화에는 대기업집단의 총수,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이들 대기업집단에 ‘개혁’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경우 자칫 우리 경제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스테판 교수는 “대기업은 한국 발전에 마이너스가 아니다. 누구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재벌은 한국 발전에 공헌했다”고 말했다.

◇ 우리 경제 무너질 수도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후폭풍이 글로벌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에 장기적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상반기보다 0.8%포인트 떨어진 2.2%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국내 경제는 수출 및 제조업 위축이 이어지고 있고 소비 등 내수마저 둔화 국면으로 진입해 경기 부진세가 장기화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브렉시트 이후 유로존의 마이너스 예금금리 확대, 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 가능성, 미국의 금리 인상 지연 등 금융 정책의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우리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받아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맹활약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4년 5월 국영기업(SOE)들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M&A 규모가 10억 달러 미만이거나 주력 사업과 관계되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 국가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조세지원제도 개정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시험연구기관 간 공동연구 확대를 위해 기업 간 연구에 12% 공제율을 적용했던 일본은 지난해 30%로 공제율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2008년 39.54%였던 법인세율을 올해 29.97%로 9.57%포인트 내렸다.

한국에서는 법인세율 인상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대다수 회원국들은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다퉈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이렇게 기업의 경영 의지를 꺾는 행위는 우리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오히려 기업의 자부심을 살려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재벌개혁 한다면 ‘해체’보다 ‘유지’ 필요

34개 경제민주화 과제를 확정·발표한 더민주는 재벌개혁이 기업의 발목잡기가 아닌 ‘대기업 대주주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를 정상화시켜 경영을 바로잡는다는 것. 하지만 결국 ‘대기업의 순환출자 해소’ ‘상법 개정안’ 등 대기업집단을 약화·해체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건전성을 높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재벌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방법에 있다.

재벌총수의 권력 약화를 위해 소액주주권을 강화해 경제민주화의 초석을 다진다는 방안은 더 큰 폐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의 힘이 강해지면서 주주들의 비위 맞추기에 바쁜 대기업들이 단기 이윤을 내기 위해 하청업체를 들볶고,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최대한 늘리고, 투자는 최대한 줄여 배당금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엔 고용 불안과 일자리 감소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듯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단행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재벌을 개혁 대상으로 보기 이전에, 재벌들이 어떻게 하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일정 수준의 경영권 보호 등을 허용하면서 그 대가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토록 하고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유효하다는 의미다.


이동화 기자 d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