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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기술을 지켜라”…전 세계에 내려진 ‘차이나머니’ 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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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기술을 지켜라”…전 세계에 내려진 ‘차이나머니’ 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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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이동화 기자] 올 들어 20개가 넘는 독일 기업에 인수를 제안하며 글로벌 인수·합병(M&A)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중국 자본(차이나머니)에 독일 정부가 제재를 가한다.

차이나머니의 세계 시장 공습이 더 강력해지면서 피해를 본 영국·호주·캐나다 등은 이미 조사에 나서거나 규제를 시작한 상황이다.
20일(현지시간) 중국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는 독일 매체를 인용해 “독일이 중국 기업의 독일 기업 M&A를 제한하는 규제안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차이나머니가 독일 기업을 먹잇감으로 노리자 산업·기술안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해 외국인 투자법 개정이라는 강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주도로 만들어진 이 방안에 따르면 △인수 대상이 독일 국영기업이거나 △정부가 기술개발에 투자한 경우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업 등일 경우 25% 이상의 지분을 획득하는 것을 정부가 불허할 수 있다.

독일과 유럽연합(EU)이 차이나머니를 위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美的) 그룹이 독일 쿠카(KUKA)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쿠카는 BMW와 아우디, 보잉 등이 공장에서 쓰는 로봇을 제조하는 데다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인더스트리 4.0’과 ‘스마트공장’ 구현의 핵심 기업이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정치권은 강력 반발했지만 메이디는 쿠카의 지분 86%를 취득해 먹어치웠다.

올 들어 이미 굵직굵직한 차이나머니 M&A가 3건이나 발생한 일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도시바의 백색가전 부문은 중국 가전회사 메이더에 넘어갔고 샤프는 대만 훙하이(鴻海)그룹에 인수됐다.

지난 6일에는 후지쓰 PC부문도 중국 레노보 품에 안겼다. 업계에서는 “차이나머니가 일본 전자업계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2011년 일본 NEC와 합작회사인 NEC 레노버를 설립해 이미 일본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레노보가 후지쯔의 PC 부문을 인수하게 되면서 일본 전자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레노보의 일본 PC부문 시장점유율이 43%에 달하는 공룡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제조업을 세계에 알린 전자산업이 차이나머니에 잠식당했다”며 “일본 기업을 지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부동산 시장도 상황 심각해

부동산 시장에 차이나머니 직격탄을 맞은 호주와 캐나다는 더 강력한 경계령을 내렸다.

국익을 위해 차이나머니 유입을 막겠다는 호주 정부는 중국 국영기업과 국부펀드가 참여한 차이나머니가 호주 전력회사 오스그리드와 추진하던 M&A를 무산시켰고, 지난해 3월부터는 외국인이 100만 호주달러(약 8억6700만원) 이상 부동산을 취득하면 1만 호주달러(약 867만원)의 등록세를 물리기로 했다.

캐나다 정부도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간단하던 투자이민 제도를 폐지시키고 차이나머니 유입을 차단하는 규제를 도입하기 위해 외국인 부동산 보유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홋카이도도 차이나머니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산케이신문은 최근 ‘10년 후 홋카이도가 중국 32번째 성(省)’이라는 기사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는 대부분의 중국인이 일본에서 영주권을 얻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고, 큰 부동산이 있으면 영주권이 쉽게 나오는 게 중국인 사이에선 상식”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특히 중국인들은 홋카이도의 부동산을 선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언론들은 차이나머니가 해외 부동산 시장에 눈을 돌린 것은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과열 현상을 보이며 집값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집값이 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고액자산가들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덜 오른 해외 주요 도시에서 매물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분석하고 있다.

◇ 왜 해외 기업 M&A에 열 올리나?

이처럼 중국이 해외 기업 M&A에 주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 아예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사들여 단숨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해외 자산 인수 독려를 위해 지난 2014년 5월 국영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거래액 기준을 1억 달러에서 10억 달러(약 1조1089억원) 이상으로 10배나 상향조정했다. 인가제였던 진행 방식도 신고제로 변경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에 따라 실제로 중국의 M&A 규모는 2014년 이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해외 기업 사냥에 나선 차이나머니 규모가 전년(576억2000만 달러)보다 58% 급증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건수 역시 최대 기록인 398건으로 전년 대비 36% 늘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영향에 대한 우려 등으로 글로벌 M&A 시장이 위축된 것과는 사뭇 반대되는 분위기다.

M&A 전문분석기관 머저마켓의 왕이칭 중국 분석가는 “중국의 거침없는 해외 M&A 광풍은 자국 내 성장 둔화를 피하고 고수익 자산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며 “위안화 추가 약세 우려도 인수를 가속화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동화 기자 d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