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웹툰 속으로] 먹는 존재들의 우아한 만찬, 음식 웹툰

공유
1

[웹툰 속으로] 먹는 존재들의 우아한 만찬, 음식 웹툰

'미식예찬'을 쓴 저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언젠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했더니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미식 탐정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겠느냐며.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속으로는 반대로 그를 비웃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만큼 토속적인 입맛을 가진 사람도 드물었으니까.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 동네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터였다. 평소에도 늘 한식을 즐겨 먹었던 그였다. 굳이 브리야 사바랭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그 사람이 토종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중요하다. 제 아무리 금수저라고 해도 뭔가를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생을 잇는다는 중요한 목적을 가진 필수적인 행위이다. 그러니 우리가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연결하면 먹는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끼니를 대충 때우자는 말을 싫어한다. 삶과 직렬로 연결되는 행위를 어찌 가볍게 넘긴단 말인가. 평소에는 모든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결정하는 성격이지만 메뉴를 고를 때 만큼은 결정장애라도 생긴 것 마냥 신중해진다. 그만큼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가 좋다. 우리나라만큼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외국 나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또 외국에서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음식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모두 이 땅에 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먹방 콘텐츠와 스타 셰프들의 출현 등이 모두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아무리 헬조선이라고 불러도 음식 만큼은 어느 나라보다 다양성을 갖췄다.

그러니 유독 음식 관련 콘텐츠가 많다. TV를 틀면 늘 맛집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나오고 포털 메인에서도 요리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곤 한다. 웹툰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음식을 주제로 한 다양한 웹툰들이 등장했다. 저마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주제는 같다. 맛있는 음식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 웹툰을 통해 미식의 세계로 초대하는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지금부터는 변주를 준 독특한 음식 웹툰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쌍갑포차
다음웹툰에서 연재 중인 배혜수 작가의 '쌍갑포차'는 오래 숙성시킬수록 깊은 맛이 나는 장(醬) 같은 작품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고 입맛을 돋궈주면서 모든 음식에 다 잘 어울리는 수수한 맛이 난다. 작품은 '쌍갑포차'라는 포차를 등장시켜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의 사연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이 포차의 정체가 독특하다. 그승(꿈의 세계, 작품에서 만들어낸 개념)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작품은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채웠다. 감정 노동에 지쳐 삶을 포기하려는 여자의 사연, 딸에게 출생의 비밀을 미처 말하지 못하고 죽어 죄책감을 갖게 된 엄마 등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낸다. 작가는 죽음과 삶의 중간에 있는 사연의 주인공들이 꿈의 세계에서 그곳의 지배자와 대화를 나누는 곳으로 포차를 설정했다. 그리고 그들마다 사연이 있는 음식을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삶을 조명하는 작가의 세밀한 묘사와 스토리텔링 솜씨가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와구와구 쩝쩝

투믹스에서 연재 중인 김진혁 작가의 '와구와구쩝쩝'은 과감하고 독특한 설정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원숭이 골요리나 양머리구이 같은 괴식 같달까? 그의 소개처럼 이 작품은 피와 내장이 난무해도 이상하게 식욕이 당기는, 맛있는 재난 웹툰이다.

주인공은 군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좀비로 변해버린 동료들이 부대를 가득 채워 숨어있는 상황이다. 먹을 것이라곤 생라면 뿐. 그 마저도 좀비에게 걸릴까 조금씩 녹여 먹는다. 그러다가 좀비가 시체를 먹는 것을 지켜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린다. 그 기괴한 장면이 그야말로 해학적이다. 결국 타인의 고통보다 내 배고픈 게 먼저란 것이다.

엽기적인 연출이지만 신기하게도 구미가 당긴다. 좀비와 먹방,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소재를 절묘하게 섞어낸 솜씨는 신인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기발하다. 좀비로 가득 찬 세상, 생존 본능보다 앞서는 건 결국 미식 본능이라는 주제가 명확해서 끔찍하면서도 군침이 도는 작품이다.



공복의 저녁식사

네이버웹툰을 통해 연재 중인 김계란 작가의 '공복의 저녁식사'는 청춘 로맨스에 먹방을 더했다. 대개 음식을 조명하면 로맨스가 힘을 잃거나 그 반대인 반면, 이 작품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작품이다. 마치 구수한 쌀밥에 어느 하나 맛없는 반찬이 없는 한정식처럼 매회마다 갖은 음식과 인물들의 갈등이 잘 배합되어 있다. 주인공이자 평범한 여고생인 공복희와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성찬, 성찬을 좋아하기에 복희를 질투하는 차갑고 도도한 민주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그리면서 복희와 같은 반 친구이면서 이웃사촌인 만두와 만두를 좋아하는 진수 세 사람의 먹방을 담았다.

정밀한 음식 그림이 늘 군침을 돌게 만들지만 그보다 더 이작품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인물들의 밸런스가 좋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개성 없는 캐릭터가 없다. 늘 맛있게 음식을 먹는 복희와 정반대로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 민주를 악녀로 만든 설정도 재미있다. 복스럽게 먹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그래서 복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스럽고 민주는 괜히 밉다. 인물의 당위성을 음식으로 부여한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삶은 토마토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캐롯 작가의 '삶은 토마토'는 웹툰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련된 감각의 작풍에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한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작품의 이야기는 늘 연애를 주제로 한다. 현대인의 연애, 그리고 원론적인 사랑을 음식에 비유해 풀어내는 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한 회를 보고 나면 액자로 만들어 집 거실에 걸어두고 싶은 욕심도 든다.

투믹스 대표 김성인
투믹스 대표 김성인
이별에 괴로워하고 새로운 만남에 희열을 느끼는 원초적 감정이 아무런 양념을 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해 그 인물의 감정이 마음 깊이 전달된다. 기존에 알고 있는 웹툰의 공식을 절묘하게 벗어나 자신 만의 스타일로 표현한 작가의 과감한 시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투믹스 대표 김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