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시래의 파파라치] 없는 듯 해도 있는 사람. 있는 듯 해도 없는 사람

공유
4

[김시래의 파파라치] 없는 듯 해도 있는 사람. 있는 듯 해도 없는 사람

[김시래의 파파라치] 지난 주말 봄 같은 날씨, 꼬막으로 유명한 여자만의 도시 순천을 여행했다.

숙소는 반월리 내리마을 마당 너른 집이었는데 한복의 명인 김혜순(60)선생의 자택이었다.
마루의 중앙 위쪽으로 없음을 낚는 곳이란 뜻의 어무재라고 불리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짓고 쓰셨다 한다. 마루에 앉아서도 수평선이 보였는데 중앙의 격변을 모르는 채 조용하고 잔잔했다.

공기와 풍광이 그만이어서 1박2일동안 틈만나면 바닷가 시골길을 따라 산책을 했는데 잔물결 위로 스며든 하늘빛이 시시각각 달랐다. 지천으로 널린 냉이를 따서 국을 끓여 먹었고 담장에 매달린 감을 따서 깎아 먹었다. 푸근하고도 고즈넉한 남도 여행이었다.

학기가 끝나가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요즘, 권태와 피곤에 근심까지 더해진 일상 때문에 심해로 가라앉는 듯 한 무력감에 시달렸다.그러나 여자만의 갯벌 안쪽으로 밀려드는 물결과 밖으로 펼쳐진 섬들은 무심하게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일몰의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해서 하나로 보였고 그래서 눈부셨다. 그 순간 그 모습은 마치 우리의 운명은 어쩔수 없이 하나라고 ,우리는 한 통속인데도 대체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듯 했다.

이 땅에 사는 사람 모두는 오늘의 사태에 대해 서로 비난할 수 만은 없는 시간과 역사의 공동운명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세끼의 밥을 먹을 것이고 열 두 번의 달력을 넘길 것이며 삼백예순다섯번의 새날을 맞아야 한다.냉정하게 돌아보고 다시 원칙을 세워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저녁 식사 후 김혜순 선생이 일행에게 들려준 말은 가슴에 와 닿는 것이었다.
“저는 평생 없는 듯 해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있는 듯 해도 없는 사람이 되겠지요.”

한 땀 한 땀의 바느질로 우리 한복의 멋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명인다운 인생관이었다.

없는 듯 해도 있는사람, 빈자리가 크고 늘 그리운 사람일 것이다. 매사를 빈틈없이 처리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더더욱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런 지도자라면, 언제고 어디서고 정신적인 주춧돌이 되어 모두를 하나되게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흔들림없는 내면의 진정성을 용기 있게 보여줄 시대의 선각자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번에는 그 사람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다음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알랭드보통은 여행을 생각의 산파라고했다 산책은 늘 다니던 길이기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깊게 헤아리고 다듬는 과정이다. 반면 여행은 새로운 사건과 사람을 만나는 다양한 변화의 여정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산책을 통해 반듯한 길을 만들자. 차분한 묵상의 시간을 거름삼아 천추의 한을 다시는 남기지 말자는 이야기다.

글·김시래 경기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조규봉 기자 c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