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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대구 서문시장의 아픈 추억, 박근혜 사진은 찢겨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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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대구 서문시장의 아픈 추억, 박근혜 사진은 찢겨나가고

대구 서문시장은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나라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김대호 박사 sbs cnbs 방송 모습.
대구 서문시장은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나라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김대호 박사 sbs cnbs 방송 모습.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주필/ 경제학 박사] 대구 서문시장에 불이 났다.

서문 시장의 원래 이름은 대구장이다.
이 대구장은 강경장, 평양장과 함께 조선시대 우리나라 3대 시장의 하나였다.

대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선조 34년인 1601년 대구에 경상 감영이 설치됐다.

현종10년인 1669년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좌도·우도로 분리되어 있던 경상도가 하나로 통합됐다.

그때 이후 대구는 영남의 중심이 되었다.

서문시장은 조선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 서문시장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KBS화면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대구 서문시장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KBS화면 캡처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영남의 물류 중심이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수도가 부산으로 옮기면서 서문시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시장이 되기도 했다.

이후 경상 감영 설치와 좌우도 통합으로 대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서문시장도 덩달아 더 커졌다.

서문시장의 첫 발상지는 대구 북문 근처로 추정된다

1920년 대구시가지 확장때 서남쪽에 있던 천황당지를 매립하여 장을 옮겼다.

바로 이곳이 오늘날의 서문시장 위치이다.

대구읍성 서쪽에 자리한다고 하여 서문시장이라고 불렀다.

서문시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흔적도 있다.

대구가 고향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곳에 자주 들렀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으로 서문시장을 방문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해도 서문시장에 박 대통령 방문 기념사진이 여러 곳에 걸려 있었다.

그 사진들이 최근 철수되고 있다.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사진을 내리는 고객이 늘어난 탓이다.

서문시장 바닥에 나뒹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찢겨진 사진 속에서 권력무상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 3차담화 이후 서문시장의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김대호 주필 /경제학 박사yoonsk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