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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콕!] 서양악기에 한국 소리 담으려 노력해온 오르겔 제작자 홍성훈의 사진 다큐 '천상의 소리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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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콕!] 서양악기에 한국 소리 담으려 노력해온 오르겔 제작자 홍성훈의 사진 다큐 '천상의 소리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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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다양한 크기의 형태의 관을 음계에 따라 배열하고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 오르겔(파이프오르간). 큰 성당이나 교회, 대형콘서트홀에서 접할 수 있는 이 서양악기에 한국의 소리를 담아내고자 하는 장인이 있다.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독일에서 오르겔 마이스터가 된 후 보장된 편안한 삶을 버리고 귀국해 올해로 18년째 천상의 소리를 짓고 있다. 13년 전 그를 만난 잡지사 사진기자 김승범씨가 홍성훈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사진으로 기록한 '천상의 소리를 짓다'(생각비행)를 펴냈다.
이 책은 오르겔 사진집인 동시에 장엄하고 웅대한 오르겔 한 대가 수십, 수백 가지의 소리를 내는 오르겔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입문서이기도 하다. 저자 김승범씨는 2003년 4월 덕수궁에서 홍성훈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오르겔바우마스터'라는 직업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생소하고 드문 터라 사진작가로서 본능적 관심이 발동해 이 인연으로 지난 13년간 홍성훈의 삶과 작품 세계를 기록하게 됐다는 것이다.

홍성훈은 독일에서 만 12년 만에 오르겔바우마이스터라는 직함을 가슴에 안게 되었으나 서양의 악기가 아닌 '한국적 오르겔'을 만들고 싶어 귀국했다. 그의 몸속에는 사물놀이와 봉산탈춤을 익히고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뮤지컬단)에서 활동했던 '끼'가 한국의 신명으로 꿈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르겔 제작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지난 18년 동안 한 대씩 한 대씩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오르겔을 지어왔다. 그가 만드는 오르겔 소리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천상의 소리이자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리이기도 하다.

홍성훈은 "무형의 공기가 수백 개의 파이프를 타고 들어가 천상의 하모니로 다시 태어나는 그 놀라운 순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며 오르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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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의 역사는 꽤 길다. 기원전 264년 알렉산드리아에는 수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물-오르겔'이 있었다. 바람을 불어넣어 공명으로 소리를 냈다. 풀무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소리를 내게끔 발전한 오르겔은 13세기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거대해지기 시작해 르네상스 시기(15세기 후반~16세기)를 거쳐 바로크 시대(17~18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유럽 가톨릭과 기독교와 함께한 오르겔 역사에 비하면 한국의 오르겔 역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있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남양 홍씨 담헌 홍대용이 선진 문물을 접하기 위해 떠난 중국의 북경 천주교회당에 있던 오르겔 소리에 감명을 받아 그 구조와 원리에 대한 탐구심을 펼친 일이다. 홍대용은 즉석에서 음을 짚어가며 조선의 가락으로 옮겨보려는 시도를 했을 뿐 아니라 짧은 시간에 오르겔의 기계적 원리까지 파악하여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로부터 2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홍대용과 같은 남양 홍씨 홍성훈이 한국 땅에서 오르겔을 지어내고 있으니, 홍대용의 꿈을 홍성훈이 잇고 있는 셈이다. 홍성훈은 오르겔을 지으면서 늘 우리 문화의 토양에 어울리는 오르겔과 미래 지향적이고 예술적 감흥이 넘치는 또 다른 세계로의 오르겔을 지향하고 있다.

홍성훈은 "오르겔은 보이는 소리로서의 형태와 들리는 소리로서의 음색이 합쳐져서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양 악기인 오르겔에 '보이는 소리로서의 형태'로 한국적인 색채를 담고자 노력해왔다. 예컨대 오르겔 외관을 한국적 격자무늬나 비천상으로 장식하고 경기도 양평의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수화 오르겔을 만들고 한국의 전통적인 경첩과 칠보공예, 채화기법을 오르겔 제작에 적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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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홍성훈은 '들리는 소리로서의 음색'에 가장 한국적인 음색인 피리 소리를 오르겔에 넣어, 한국적 오르겔을 완성했다. 혹자는 오르겔이라는 서양악기에 웬 한국적 소리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한국의 땅에서 한국인을 위한 악기이니 한국의 소리를 담는 게 옳다고 홍성훈은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 천상의 소리와 천년의 신비 한국옻칠을 결합한 소리 조형물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한편 홍성훈 마이스터의 '천상의 소리를 짓다' 북토크콘서트가 12월 1일 오후 7시30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새사람교회에서 열린다. 콘서트에는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대표, 장우형 서울장신대 박사, 김동철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이상만 음악평론가, 문병석 가톨릭대 교수, 김승범 사진작가가 패널로 참여하고, 김서휘(오르가니스트)와 정재우(대금)가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