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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3)] 조문국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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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3)] 조문국의 칼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은제세잎고리 손잡이큰칼, 의성조문국박물관 이미지 확대보기
은제세잎고리 손잡이큰칼, 의성조문국박물관

조문국이 위치하였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신라가 영남 일원에서 북쪽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소백산맥 안팎을 연결하는 계립령과 죽령의 두 교통로가 하나로 합쳐 경상북도 경주로 들어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하는 곳으로 군사적으로 절대 요충지였다.

신라는 이에 따라 의성 지역에 대하여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고,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문국을 정벌하였다. 신라는 이 지역을 조문군으로 명칭을 바꾸었을 것이다.

신라는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의 예를 통해 볼 때 한 나라를 병합한 뒤,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신라는 이 지역을 장악하여 조문군으로 삼으면서 일단 소백산맥 방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고, 북방에서 정치변동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남하하여 내려오는 유이민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조문성이 축성되었다는 것은 이곳이 곧 조문군의 군치로서 당시 이 지역의 중심지임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