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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5)] '조문성(召文城)' 자체가 '금성(金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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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5)] '조문성(召文城)' 자체가 '금성(金城)'이다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삼한시대의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의성조문국박물관
삼한시대의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의성조문국박물관


조문성(召文城)은 기록을 통해 볼 때 금학산 고성, 지금의 금성산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문성이 위치한 금성면 일대는 신라가 영남 일원에서 북쪽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즉 소백산맥 안팎을 연결하는 계립령과 죽령의 두 교통로가 하나로 합쳐 경상북도 경주로 들어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하는 곳으로 군사적으로 절대 요충지였다.

이러한 곳에 조문성이 축성되었다는 것은 이곳이 곧 조문군의 군치로서 당시 이 지역의 중심지임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곳을 금성이라고 부르지 않고 조문성이라 부른 것은 경주의 왕성이 금성이라고 불린 연유도 있을 것이다.

한편 ‘조문’의 한자 표현인 ‘조문(召文)’은 곧 ‘금(金)’을 의미하였으며, ‘조문성(召文城)’ 자체가 ‘금성(金城)’이라고 보기도 한다.
의성 지역에는 10여 개소에 성곽이 있었으나 현재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금성산성, 의성읍의 치선리 산성터, 단촌면의 병방리 산성터, 옥산면의 금학리 산성터(황산성), 안계면의 봉양리 산성터 등 5개소뿐이다. 그 중 금성산 정상을 중심으로 동쪽의 능선까지 약 4㎞ 가까이 토·석(土石) 혼축의 성벽이 남아 있는 금성산성은 시기를 달리하며 여러 차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산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 있어 이곳이 고대 의성 지역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