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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1)] 중국의 양직공도와 일본의 일본서기 기록에 짧게 등장하는 다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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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1)] 중국의 양직공도와 일본의 일본서기 기록에 짧게 등장하는 다라국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옥전 M3호 고분에서 출토된 봉황문양고리자루큰칼, 합천박물관
옥전 M3호 고분에서 출토된 봉황문양고리자루큰칼, 합천박물관


중국의 양직공도, 일본의 일본서기 기록에서만 짧게 등장하는 다라국은 5~6세기 합천군 쌍책면 일원에 있었던 가야제국 중 하나다.

그동안 성산 토성이라 불렸던 다라국 성은 자연절벽으로 이뤄진 합천 황강변 독립 구릉에 있다. 북동향엔 토성이 축조돼 있고 남쪽은 뒤에 만든 석성(石城)이 남아 있다.

이번에 토성벽 구조가 확인된 북쪽 능선부는 대규모 흙을 쌓아서 높이 9m 전후 급경사면으로 구축돼 있다. 너비 27m 내외, 높이 9m에 달한다.

이번 조사로 가야시대 토성 건축 방식도 함께 밝혀졌다. 가야시대 토성 건축 방식은 기반토로 바닥을 만든 후 성벽 바깥 아래층의 고운 점토를 퍼올려 1차로 성토(盛土)했다.
이후 토성벽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성벽 길이 방향으로 '석축쌓기' 공법으로 기초를 다지고 나무기둥을 활용해 성토하고 마감한 형태다.

발굴팀은 이러한 대규모 성벽 축조는 대외 교류가 편하고 방어에 유리한 황강을 낀 자연 구릉을 도성으로 선정해 성곽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설계부터 흙과 돌을 이용한 기초다짐과 성벽을 따라 석축으로 기초부를 형성한 '석축쌓기' 공법은 가야인의 독특한 축성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성 내부에서는 대규모 제사 유구도 확인됐다.

제사 유구는 중소형 구덩이가 여러 개 합쳐진 형태로 다량의 유기물질을 태운 흔적이 함께 발견됐다. 유구 내부에서는 머리와 손발이 깨져 나간 인물형 토우(흙으로 만든 인형)가 출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