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난해 4월 미래부 국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10년간 1000억원을 들여 ‘한국형 슈퍼컴’을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국과심)에서는 기간내 개발 목표 성능을 높이라고 2차례나 주문하며 이를 반려했다. 5년 후면 목표 성능(1페타플롭스) 기종이 나오면 고철이 될 것이 뻔했기에. 하지만 미래부는 국과심 몰래 이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이를 국과심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기존 SW사업 내 ‘계속 사업’중 하나로 끼워 넣었다. 미래부 담당 과장은 당초 국장이 발표한 ‘한국형 슈퍼컴 개발’ 계획에 대해 “SW인력 확산에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며 사업 의미를 축소했다. 정부의 향후 5년간 프로젝트 예산 지원액도 당초의 절반인 250억원이 됐다. 한국형 슈퍼컴 개발 계획은 이렇게 왜곡됐다. 기막힌 것은 이미 순국산 슈퍼컴 업체가 미래부가 개발하려는 목료 기술을 상품화했고 수출까지 하고 있는데도 외면당했다는 점이다. 이 제품 기술력은 세계적 슈퍼컴기구 ‘톱500’에서도 소개됐고 미국방부와 프랑스 최대 이통사가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4. 지난 1년간 굵직굵직한 슈퍼컴 관련 이슈들을 들춰보면 공통적으로 ‘슬그머니’라는 부사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사전적 의미인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슬며시’와 딱 맞아 떨어진다. 이들 프로젝트는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거나 현재 진행형이다. 또다시 ‘슬그머니’ 이뤄질 것이란 우려감을 사고 있다. 슈퍼컴은 4차산업혁명의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하지만 슈퍼컴을 둘러싼 ‘슬그머니’ 관행은 여전히 투명치 못한 과학 행정의 부끄러운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정사실화 한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4차산업혁명의 적임자인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새 대통령이 나온다면 그보다 먼저 할 일은 ‘슬그머니’ 병(病) 치료일 것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로라면 과기행정 책임자들 역시 그리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재구 기자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