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찾아왔던 이 땅의 봄은 언제나 바람을 타고 다시 온다. 바람의 등에서 봄이 손을 뻗어 흙을 더듬으면 단잠에 취해 있던 마른 풀들이 깨어나고, 키 큰 나무들은 풀들의 하품소리에 눈을 떠 기지개를 켠다. 그리하여 매번 흙길을 따라 북상하는 봄은, 도심 속에 가장 늦게 도착한다.
서울의 도심으로 봄은 더디 와서 일찍 떠난다. 힘센 겨울과 여름의 중간에서 눈치 보듯 바삐 왔다가는 봄이 아쉬워 서울 사람들은 다른 곳의 봄이라도 한 발짝 서둘러 만나 봄을 오래 누리고 싶어 한다.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볕 좋은 날이면 한강 옆으로 몰려든다. 봄은 물길을 따라 그곳에 먼저 다다르고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금모래는 없어도 강변에는 여전히 흙이 있고 흙은 또다시 마법을 부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변은 아직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2월 끝의 바람은 한낮에도 여전히 쌀쌀맞고,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겨울 편으로 돌아서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3월을 막아선 2월의 날들은 손가락 개수만큼도 남지 않았으니 사람들의 마음에 봄은 이미 코앞에 서 있다.
“봄이 돌아왔다. 대지는 마치 시를 아는 아이와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봄의 흙 위에서 생명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시적이다. 그 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어른들의 매끄러운 시어 이전의 것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순수한 투박함. 동심을 사로잡았던, 눈요기로 가득한 봄의 예술을 누구라서 사랑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 동심은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한때나마 모두의 것이었으므로, 매년 2월의 끝이면 사람들은 다시 어려진 마음으로 그토록 봄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3월이 오면 누워 있던 마른풀들은 초록빛 혈색을 되찾아 일어날 것이고, 사람들은 외투의 무게를 덜어낼 것이다. 그리고 자주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3월이 오면 동심을 가져본 적 없는 듯한 기괴한 어른들이 이 땅에 써내려간 서늘한 이야기들이 비에 씻기고, 그 위로 다시 햇살 같은 희망이 시처럼 쏟아질 수 있기를.
마침내 3월이 와서 이번 봄만큼은 흙냄새 가득한 노란 봄이 서울의 도심 속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기를, 2017년의 ‘서울의 봄’은 1980년 그 해처럼 짧을 일 없이 이 땅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기를, 2월의 마지막 주말을 앞둔 한강변에서 간절히 기원한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