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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이은선 안무의 'The Way, 더 웨이'…길 위의 선 사람들의 세 가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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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이은선 안무의 'The Way, 더 웨이'…길 위의 선 사람들의 세 가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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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안무의 '바다를 담은 소녀'
이은선 안무의 'The Way, 더 웨이'가 지난 3월 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더원 댄스 컴퍼니(The One Dannce Company, 대표 이은선 경희대 무용학부 객원교수) 주최, 발레노바(Balletnova, 예술감독 김화례 경희대 무용학부 발레교수)와 더 원 댄스 컴퍼니가 주관한 무담(舞談)은 정형의 발레로 관객들의 여린 감정선을 자극했다.

이은선의 춤 이야기는 3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 'La Esmeralda Pas de Six'(에스메랄다 파데 식스), 제2장 '휩시에게 들려주는 두번째 이야기', 제3장 '나의 그대여'는 클래식 발레에서 현대발레의 서정의 간극을 촘촘히 채워 넣는다. 각 장(場)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반려견에 관한 명상,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발레적 상상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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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안무의 '에스메랄다'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구성된 발레는 환상적 낭만 발레를 벗어나 일상적 삶의 모습을 구현한 발레 구성과 완벽한 형식의 규범을 따라간다. 길 위에선 사랑과 길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춤의 노래 'The Way, 더 웨이'는 서민들의 일상에 깔리는 슬픔의 알레고리를 간결하게 담백하게 풀어낸다. 이은선의 우의(寓意)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제1장: 'La Esmeralda pas de six'(에스메랄다 파데식스), 낭만파 음악가 체자레 푸니(Cesare Pugni)가 1844년 발레음악으로 작곡한 하프 주조의 현의 울림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창출하는 가운데 탬버린 재주를 부린 에스메랄다의 애완염소 잘리를 떠올리며 탬버린을 든 발레리나들의 4인무(파 드 까트르)가 경쾌함을 이끌면서 2인무(파 드 되)이 끼어들고, 남녀 독무(빠 쇨르)의 변주, 6인무(파데식스)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기본 공식의 춤은 시작된다.

'노틀담의 꼽추'를 원작으로 하는 익숙한 형식의 춤은 집시 무리와 살면서 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춤꾼 에스메랄다의 기구한 운명과 슬픔을 승화시킨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다. 금도를 넘어선 사랑은 파국을 낳지만 '불나비 사랑'은 그 뜨거웠던 사랑의 몸짓을 보여준다, 흰 와이셔츠에 검정 레오타드의 사내(최호성),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던 그 남자의 품에 안긴 에스메랄다의 짧은 사랑,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느리고 깊은 춤의 의미와 소통한다.

사랑과 죽음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검정과 빨강 주조의 의상, 붉은 꽃 머리핀, 양 팔에 묶은 밴드, 분홍빛에 담은 사랑은 원숙한 기교로서 보다는 풋풋함이 살아있는 가능성의 춤으로 다가온다. 사선의 사인무, 발레리노의 터치로 이별의 아픔을 남기고 사라지고, 남겨진 자(김희현)은 의연하게 슬픔을 삼킨다. 분위기 메이커 박윤주, 오현경, 이혜민, 전다린의 파 드 까트르가 수미쌍관의 묘를 보여주며 과거를 유추하는 몸의 텍스트는 현재로 이음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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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안무의 '나의 그대여'
제2장: '휩시에게 들려주는 두번째 이야기', 반려견의 죽음을 다룬 전작 '휩시에게'의 후편이다. 이 현대발레는 SNS 사연을 정리하여 일상의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휩시의 상실로 파생된 침울한 분위기를 발레로 구성한 것이다. 이별의 우울감을 실은 레스프기의 네비(Nebbie, 안개)라는 피아노곡이 안개처럼 깔리고 맨발에 청카바와 검정 원피스에 뒷머리를 딴 여성 2인무, 각각 탑 조명을 받는다. 살색 원피스의 여인들, 숫자의 변형으로 가족의 느낌을 준다.

고독하고 적막한 공간감을 주는 모차르트의 장조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이 사용된다. 간결한 멜로디와 화성이 주는 서정적 우수에 안개의 비통한 장엄 가사는 우는 듯 웃는 듯한 혼돈의 주인공의 심정을 잘 대변한다. 안개가 나지막하게 깔리며 조밀하게 채워지는 느낌으로 시작하여 싹 걷히는 느낌을 준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그 그리움의 숲에는 안개가 사는 법이다.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 주인의 허전함, 그리움, 아픔을 생각한 휩시의 가상편지로 사연은 시작된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다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휩시의 안부를 담은 메시지가 주인을 위로하며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혼과의 소통과 사랑은 사람 사이의 감정과 다름없이 우리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모든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휩시와의 해후를 기다리는 진한 사랑이 느껴지며 1장보다 원숙하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

이은선 안무의 '휩씨에게 들려주는 두 번째 이야기'이미지 확대보기
이은선 안무의 '휩씨에게 들려주는 두 번째 이야기'
주인과 반려견을 표현하는 여인 A는 B를 쓰다듬고 애정을 표현한다. 이 때 공간의 경계를 구분 짖는 샤막이 내려오고 맨발의 여인 2인무는 샤막 밖에서 서정을 훑어내며 춤추고, 샤막 안의 4인무는 또 다른 세계의 휩시의 세상을 표현한다. 슬픔의 안과 밖 풍경, 이때 샤막 다시 오르고, 모두(윤서진, 유가원, 김윤정, 박수현, 양도예, 차지현)가 하나 되면서 서정은 극고조된다. 검정 원피스의 여인,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양한 기교의 학구적 발레 2장이 종료된다.

제3장 '나의 그대여', 조명이 크로스 되면서 여인(이은선)이 등장한다. 길 위에 서있는 여인은 사랑의 시원(始源)을 찾아간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과거의 삶,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했던 과거 속에 여인은 깊은 회상에 잠긴다. 작곡가 Lord J의 강인하고 따뜻한 대한민국의 여성, 제주해녀를 위한 창작헌정곡 '바다를 담은 소녀' 중 피아노 버전은 암시적인 인연을 보여준다. 뜨거운 열정과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사내(조현상)는 방황의 춤을 춘다.

열정이 축적된 자주색 스커트의 젊은 여인(서지희)의 독무가 이어진다.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온 '나의 그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길 위에서 헤매었고 사무치는 안타까움이 있어지만 서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운명처럼 만난 그대는, 한눈에 나의 그대임을 알게 되었고, 서투른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녀 이인무 장면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만화영화 '너의 이름은'의 OST가 사랑과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염원한다.

벽을 허물지 못하고 이별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던 첫 사랑, 이제 다시 연인들의 사랑 앞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주쳐야할 수많은 벽들이 놓여있지만, 기다림의 짓눌린 세월보다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표현된다. 여린 감정들이 섬세하게 간결하게 표현된다. 다시 수직의 길 위에 여인은 자신의 길을 가고, 건너편의 사내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힐끗 보기도 하지만 용기가 부족해서인지 사랑에 서툰 듯하다.

교육자로, 발레노바 단원으로 활동해 온 무용안무가 이은선이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이야기들을 담은 이은선 안무의 'The Way, 더 웨이'는 '해설이 있는 발레', 융합공연 'Kiss the Operama 2015', 라디오진행 컨셉으로 구성한 '춤으로 읽는 Your Story' 등으로 체계적인 교육적 안무의 정형을 보여준 발레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오십육일 간의 땀의 기록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였다. 이은선 발레의 지속적 발전을 기원한다.

장석용(Chang, Seok Yong)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무용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