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기차 시대는 화려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막을 내립니다. 1908년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됐지요. 모델 T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대량생산 방식의 자동차로 가격과 연비, 주행거리 등 모든 부분에서 전기차를 압도했습니다. 당시에는 환경적인 문제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테니, 전기차를 권할 이유도 없었지요.
어찌됐건 전기차는 꾸준히 개발됐습니다. 미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성공열쇠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GM이 1996년 선보인 전기차 ‘EV1’은 비운의 스타라고 불립니다. 너무 인기가 좋았던 게 화근이었지요. 여기에는 음모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1996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른바 ‘배기가스 제로법’을 발표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를 판매할 경우 전체 판매량의 20%는 배기가스가 전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요. GM은 때를 맞춰 전기차 EV1를 선보입니다. 전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 방식의 순수 전기차였죠.
GM은 이 차량을 소비자들에게 리스(대여)만했죠. 아마도 차량 가격이 비싼 탓에 선택한 판매 방식으로 보입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한 달 리스 비용이 꾀나 저렴했다고 합니다. 성능면에서도 현재 나오는 전기차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1회 충전으로 160km를 주행할 수 있었죠. 최고속도는 시속 130km에 달했고,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9초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마어마한 녀석임에는 틀림없었지요. EV1은 대박을 쳤습니다.
하지만 EV1은 불행을 맞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섰을까요. EV1의 등장으로 자동차 산업과 연계된 산업들이 아우성을 쳤죠. 순수 전기차 EV1이 도로 위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유업계는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했었을 것입니다. 부품수를 3분의 1수준으로 줄인 탓에 부품업계도 근심이 높아졌죠. 결국 관련 기업들이 주정부를 압박하면서 2003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슬그머니 배기가스 제로법을 폐지합니다.
결국 EV1 생산의 채산성이 맞지 않았던 GM 역시 느닷없이 EV1에 결함이 있다며 강제 수거합니다. 그러곤 사막 한가운데서 폐기처분하지요. 그동안 전 세계에서 수많은 자동차가 태어나고 사라졌지만 이처럼 기구한 운명을 가진 모델도 드물 것입니다.
천원기 기자 000wonki@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