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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긴 생각] 축제 같은 죽음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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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긴 생각] 축제 같은 죽음을 맞고 싶다

신현정 중부대 교수
신현정 중부대 교수
몇 년 전부터 나만 보면 탱고를 배우라고 권하는 지인이 있다. 내가 평소 워너비로 생각하는 분이라 내심 진지하게 탱고입문 여부를 두고 고민하기도 했다. 조화와 교감을 중시하는 탱고는 춤을 추는 내내 상대의 몸짓과 반응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태생적으로 우아하지만 관능적인 춤이 탱고이다. 죽기 전에 한번은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무도회장을 아름다운 몸짓으로 누벼보고 싶은 로망은 있다. 그러나 현실 속 나는 안타깝게도 타고난 음치•몸치인데다 항상 분초를 다투는 삶을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아직까지 선뜻 춤과 같은 취미생활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지인은 왜 그토록 내게 탱고를 권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반전 같은 대답을 내어 놓는다. 다름 아닌 자신의 장례식을 탱고무도회로 치르기 위해서란다. 물론 탱고를 통해 맛본 새로운 삶의 기쁨을 가까운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탱고를 권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가 탱고를 권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의 죽음이 한 편의 축제로 마무리되길 원해서라고 한다. 평생을 함께 해 온 친지와 가까운 지인들이 자신의 죽음을 눈물로 애도하기보다, 애절하리만큼 열정적인 탱고 선율에 맞춰 생애 가장 뜨거운 몸짓으로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언어가 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춤이라는 태초의 소통방식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과 잊지 못할 최후의 교감을 나누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생각하는 ‘웰다잉(well-dying)’은 품격으로 포장된 우아한 조문의식과 고별사를 대신하여 음악과 춤이 있는 축제 형식의 죽음인 것이다.

‘웰다잉’이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평안한 죽음을 맞기 위한 일련의 준비를 일컫는 말이다. 안락사 논쟁에서 촉발된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웰빙붐과 더불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인구의 고령화와 가족해체로 인한 고독사가 증가하면서 ‘웰다잉’은 죽음의 당사자인 본인은 물론 가족들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현대인들의 의지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명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지금까지 우리의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이며 힘든 삶을 위로해 주던 책들 사이로 죽음에 대한 책들이 요즘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죽음에 관한 고전으로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여전히 백미이지만, 최근의 ‘웰다잉’ 경향을 반영한 책들 중 눈이 가는 몇 권의 책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예일대 교수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에서 탈피하여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인터넷을 통해 아이비리그 3대 강의라고 불리는 셸리 케이건의 죽음학 동영상 강의도 무료 열람이 가능해서 철학수업을 준비할 때 나도 가끔 참고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수많은 환자들의 임종을 목격한 의사인 아툴 가완디의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요지는 간단하지만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이를테면 당신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거든,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사실 2015년 이 책이 출간되기 전 이미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에 생명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런 죽음의 과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을 몸소 실천해 보이기도 하셨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죽음으로 다가온다.

세 번째로 인간의 존엄사에 대해 무게감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는 조조 모에스의 『미 비포 유(me before you)』를 들 수 있다. 이미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고,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시종일관 밝고 사랑스런 로맨스로 묘사해서인지 눈물과 웃음을 번갈아가며 읽는 이의 가슴에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네 번째 책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이다. 그냥 죽어가는 대신 남은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한 한 시한부 젊은 의사의 2년간의 기록을 통해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폴 칼라니티는 ‘생물을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문장을 통해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더 의미있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고민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다섯 번째 책으로는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들 수 있다. 한 평범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이야기로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지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담담하지만 리얼하게 들려준다. 그 외에도 케이티 로이프의 『바이올렛 아워』에서부터 셔윈 눌랜드의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등이 있다.

사실 2000년이 넘게 인류가 갈구해 온 절대 진리를 상대주의 혹은 자본주의와 맞바꿔버림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인지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답을 구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규정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진지한 몸부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죽음에 관한 서적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의 서가를 채워나갈 것이다.

신현정 중부대 교수